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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호(택호)

[2017-12-26 오전 11:11:00]
 
 
 

천지가 꽁꽁 얼어붙었다. 한강이 얼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예년보다 한 달이나 일찍 얼었단다. 우리 고장은 그래도 남쪽이라 조금은 추위가 덜하지만 겨울 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집집마다 문풍지를 덧대고 바람 한 점 들어오지 못하게 꼭꼭 문을 닫고 지낸다. 그래도 마음의 문은 열어야 한다.
 

군불을 지핀 따뜻한 황토방에 앉아서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보다가 누렇게 변한 흑백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와 그 옆에 서 있는 어머니 친구 한 분을 보았다. 나는 그 순간 ‘아! 삼술이 어머니, 파서댁 아지매’하고 혼자 말했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굴밭댁’ 이었다. 나는 50년 쯤 지난 사진 속 어머니 친구 분의 댁호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까지 2년 동안 방학이 되면 어머니가 주시는 외상 장부를 들고 우리 마을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까지 수금에 나섰다. 우리 집 정미소(방앗간)에서는 벼와 보리의 도정은 물론이고 여름에는 국수를 만들었고 설 명절에는 가래떡과 시루떡을 했다. 벼와 보리의 도정은 그 즉시 곡식으로 삯을 받았지만 국수나 떡을 만든 삯은 외상이 많았다. 장부에는 모두 댁호(택호)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집의 댁호를 외우고 있었다.
 

옛날 시골에서는 결혼한 아주머니를 댁호(택호)로 불렀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택호, 일반인은 댁호를 불렀는데 여성에 대한 작은 존중의 의미로 이름대신 불렀던 것이다. 이런 댁호는 그 여성의 출생지나 가문을 기본으로 해서 붙였는데 여기에도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우선 한 동네에서는 같은 댁호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운 동네에서 시집 온 경우는 그 마을 이름을 붙여 주었고 멀리서 시집 온 경우는 그 지역 이름을 붙였다. 또한 시집 온 후 일정 기간은 새댁으로 부르다가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댁호를 불러 주었다. 우리 어릴 때는 이웃집의 여러 가지 형편과 살림살이를 서로가 잘 알았고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살았다. 그래서 이웃집 어머니도 형도 누나도 모두 내 가족처럼 부르고 살갑게 지냈다. 그러니 웬만한 일은 서로 이해할 수 있었고 다툼도 잘 없었다.
 

나는 TV프로그램 중에서 ‘한끼줍쇼’를 자주 보는 편이다. 유명 연예인 두 명이 저녁 먹을 시간쯤에 무작위로 어느 가정을 갑자기 방문하여 저녁 한 끼 줄 수 있는지 물어 본다. 주인의 허락이 있으면 그 집의 식구들과 함께 그냥 있는 찬과 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내용이다. 그런데 낯선 집에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참 어려워 보였다. 여러 집을 방문하여 겨우겨우 허락을 받곤 했다. 특히 경비실을 거치고 두 번 세 번 비밀 번호를 눌러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집 앞에 도착할 수 있는 고급 아파트에서의 녹화 장면은 본 기억이 없다. 주로 저층의 빌라 또는 보통 서민들의 단독 주택을 방문 했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대부분의 집이 보통이하의 서민 가정이었고,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생활하는 가정도 있었으며 두 세 명의 자녀들이 있는 가정이었다. 아주 윤택한 집이나 젊은 부부만 살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갑작스럽게 방문한 낯선 손님에게 함께 식사 할 수 있는 자리를 허락한 그 분들은 모두가 친절하고 겸손했으며 꾸밈없고 소탈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냄새가 전해져 오고, 댁호를 부르면서 이웃끼리 보잘 것 없는 작은 음식도 나누어 먹든 어릴 적 고향마을이 생각나기도 한다.
 

얼마 전 시내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옆 자리의 사람들이 서로 언쟁을 벌였다. 처음엔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보였는데 아마도 술이 좀 과한 탓인 것 같았다. 그들의 언쟁 중 내 가슴을 저리게 하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가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가 있나. 서로의 집을 오가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기를 했나 집 밥 한 끼 서로 나누어 먹어 보기를 했나. 서로의 자녀들 얼굴이나 이름을 제대로 알기를 하나. 기껏해야 밖에서 만나 술 몇 번 먹고 밥 몇 번 먹었던 게 모두인데 이정도의 친분은 흔들리는 선반위의 유리잔에 지나지 않는다”.
 

맞는 말이었다. 친하다는 게 무엇인가? 아파트라는 네모진 콘크리트 집에 갇혀서 이웃을 모르는 사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이웃이나 지인을 내 집에 모셔 집 밥 한 그릇 대접할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않는 사회. 서로의 근본을 알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그러고 보니 내가 알고 지내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몇 몇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의 가족 구성은 어떠한지 잘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의 집에서 그 집의 음식이나 차를 먹고 마셔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나는 내 집에 사람 모셔 와서 같이 먹고 놀기를 좋아한다. 내 아내도 이 점에서는 나와 비슷한 성향이라 서로 간 별 마찰이 없다. 내 어릴 적 우리 동네 ㅇㅇ댁  ㅇㅇ댁 아지매들은 배추전 하나를 부쳐도, 수제비 한 그릇을 끓여도 별미라고 이웃을 부르곤 했는데.
 

부북면 무연리에 가보라. 집집마다 큰 나무 문패가 걸려있다. 그 문패에는 ㅇㅇ댁이라고 멋진 글씨로 씌어있고 그 댁호(택호) 옆에 예쁜 민화도 그려져 있다. 한 집도 빼 놓지 않고 집집마다 댁호가 걸려있다. 그냥 그 문패만 보아도 그 마을이 아름다워 보이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도시에서 귀촌한 사람들이 지은 신축 주택들에도 모두 댁호가 걸려 있다. 나는 무연 마을에 갈 때 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마을마다 문패에 댁호를 새기고 이웃끼리 정답게 소통하면 더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고.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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