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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018-03-12 오전 10:11:00]
 
 
 

살다 보면 자주 정겨움 속에 빠져들 때가 있다. 무심코 바라본 것들이, 그냥 지나가는 소리들이 참으로 정겨워서 내 가슴을 행복하게 해줄 때가 있다. 내가 애써 만들지 않아도 그냥 마음의 여유만 가지면 정겨운 모습과 소리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침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던 참새들의 재잘거림과 포로롱 날아오르는 날개 짓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집과 뒷집 사이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는데 뒷집을 새로 지으면서 이 울타리가 블록 담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겨움을 하나 잃어버렸다. 아침에 동쪽 창을 열고 내다보면 한 무리의 참새들이 탱자나무 울타리에 앉아서 열심히 노래하곤 했다. 나는 아침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에 행복해 하곤 했는데 이제 그 모습과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문구점에 들렀다. 잔잔한 무늬가 있는 화선지 재질의 편지지를 골랐다. 색깔은 아이보리, 연두, 옅은 재색 등 세 가지로 하고 봉투는 그냥 하얀 색으로 했다. 그리고 플러스 펜도 몇 자루 샀다. 글 쓸 때 플러스 펜 끝에서 나는 긁힘의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몇 번씩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날마다 그 많은 연락의 오고감이 있지만 가슴 짠한 느낌을 받아 본 일은 기억에 없다. 다만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알려 주고 받는 것일 뿐이다. 편지 쓰는 실력이 제법 괜찮았는데 너무 오랫동안 묵혀 둔 기능이라 실력 발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또 편지를 받는 사람도 펜으로 쓴 글씨의 편지를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 지 확신이 들지 않아 아직 한 통의 편지도 쓰지 못하고 있다. 유치환의 시 ‘행복’에서처럼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가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던 그 정겨운 시간들을 우리는 모두 잃어버렸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일들로 이런 저런 축하를 받았고 또 축하를 보내기도 했다. 축하의 방법은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축하의 꽃을 보내기도 하고 축전을 보내기도 하고 그냥 전화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게 남아있는 축전카드나 꽃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고마움을 기억하거나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고 메모를 해 두었던 것 같은데 그마져도 오래전의 것은 사라지고 없다.
 

지난겨울 어느 날 황토방 부엌에서 박스에 담긴 종이를 태우다가 오래 전에 받았던 노끈에 묶인 축전카드 뭉치를 발견했다. 누구에게 온 것인지 한 장 한 장 펼쳐 보았다. 이름만 다를 뿐 마치 한꺼번에 복사한 사진처럼 모두 똑같은 내용의 인쇄 글씨가 몇 자 적혀있었다. 나도 그냥 한꺼번에 아궁이의 불속에 넣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필요치 않은 책이나 인쇄물 등을 버리기 위해 서가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일기장을 들추어 보았다. 아! 이 정겨움이란. 이 곳 저 곳에서 가슴이 짠하고 눈시울이 적셔져오는 오랜 기억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장학사로 첫 발령을 받아 낯설고 먼 곳에서 새로운 업무 속에 힘겹게 생활하던 시절에 받았던,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펜으로 쓴 격려의 편지 한 장. 색 바랜 그 편지를 보는 순간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대해 주시던 큰 누님 같았던 까마득한 선배 여선생님의 얼굴이 마치 마주 앉아 있는 듯 떠올랐다. 나는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 내려가면서 참으로 한없는 정겨움을 느꼈다.

몇 년 동안 함께 근무하다 먼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던 동료 선생님이 보내주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편지. 교사시절, 진로 선택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던 나에게 어느 장학사님이 보내주신 보석 같은 조언이 담긴 멋진 필체의 편지. 병마와 싸우면서 힘겹게 교직생활을 하다가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교직을 떠나면서 전해져 온 어느 보건 선생님의 편지. 그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항상 밝은 얼굴로 교직원과 아이들을 대하던 선생님의 얼굴이 새삼 떠올랐다. 몇 년 전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생각하면 참 좋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이토록 빨리 떠난 것에 대해 슬픈 생각이 뭉클했다.

나는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글들은 이렇게 일기장에 딱풀을 칠해 붙여 두고 오래 오래 간직하고 있다.

아 참, 중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내 딸이 임용시험 공부할 때 써 준 편지도 일기장에 붙여두고 10년이 넘도록 잘 간직하고 있다. 내년에는 꼭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약속대로 그 다음해에 합격했다. 잉크 냄새나는 펜으로 편지지에 편지를 써 본 사람은 안다. 진실한 마음과 상대에 대한 존경과 신뢰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편지는 쓸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표가 붙은 편지봉투에 담겨 전해져 온 편지 한 장에 스며있는 정겨움의 무게가 얼마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오늘 이 비가 멈추기 전에 무디어져 가는 내 감성에 새 살을 돋게 해주고 정겨운 추억들을 떠 올려줄 3곡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이은미가 불러주는 - ‘Send in the clowns’ , 김광석의 ‘거리에서’ , JIM Rreeves가 불러주는 ‘He’ll have to go’ - 그리고 끝내 보내지 못할 지라도 기억 저 편에 남아있는 그 누군가에게 한 장의 편지를 꼭 쓰고 싶다. 플러스펜으로. 아직 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늦은 겨울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다.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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