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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봄을 위해

[2018-04-10 오전 10:00:00]
 
 
 

봄볕에 녹은 얼음이 개울을 이루어 흐른다. 고집스럽지 않고 둘러 둘러 여유롭게 흘러간다. 돌덩이처럼 굳어있던 언덕에 봄비가 내렸다. 빗물 머금은 언덕은 모든 것을 포용하며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살짝 밟으면 부드럽게 내려앉는 그 감촉이 한없이 정겹다. 내가 밟은 그 언덕에 쑥이 돋아나고 노란 민들레가 얼굴을 내밀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봄에도 방송에서는 뉴스의 대부분을 범죄와 사고 소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아름다운 소식들은 보기 어렵다.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들어야 청소년들이 밝고 바르게 성장 할 것이고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데. 밝고 좋은 소식들은 없는 것인가? 찾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시청률이 낮아 편성하지 않는 것인가?
  

요 며칠 TV를 보지 않았다. 이토록 좋은 계절에 좋은 소식들만 접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야 신문 보면 되고. 그런데 TV에서는 보면 볼수록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식들을 연일 반복해서 방송한다. 그것도 보통 사 오 명이 함께 어떤 중요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학술대회라도 하는 수준으로 진행한다. 언제 그 사건들에 대해 그렇게 많은 연구를 했는지 또 조사를 했는지, 여론재판 수준이다. 이런 방송이 싫은 것이다.
 

절제해야 할 부끄러운 욕망들을 내려놓지 못해, 또는 주어진 권한을 정당하고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은 사유로, 만인의 부러움을 사며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듯 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야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또한 그들에게는 봄이 없다. 이토록 아름답고 환- 한 봄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 여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인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봄을 빼앗을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을까? 모두가 함께 걱정하고 자숙하며 바른길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날마다 반복해서 방송하고 자리마다 이야기 꺼리로 삼아 떠드는 것으로 그들에게서 빼앗은 봄을 즐기는 듯 한 모습 또한 성숙한 삶의 모습은 아니다.
 

「바람 불면 다시 오리라」를 읽었다. 많은 사람에게 좋은 글을 통해 봄바람 같이 따뜻한 마음을 안겨 주신 법정 스님의 일생을 소설화 한 책이다. 스님은 무소유의 철학을 확실하게 실천함으로써 우리에게 본을 보여 준 분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일체 가지지 않았던 분, 그 어떤 직함도 가지기를 마다하고 깊은 산 속 암자에서 생활하며 글쓰기를 좋아했던 분이었다. 그렇다고 은둔생활을 하진 않았다.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서울 성북동에 길상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서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급 요정 ‘대원각’이었다. 이미 작고한 이 요정의 주인 김영한(시인 백석을 사랑했던 여인)은 백석의 시(詩) ‘나와 나탸샤와 흰당나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영한 여사는 말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은 후 대원각을 불교 도량으로 기부하기로 하고 법정 스님에게 뜻을 전했다. 그러나  스님은 무려 7년이란 기간 동안 수락하지 않다가 결국 1995년에 그 뜻을 받아들여 그 자리에 길상사를 세웠다. 7000여 평에 달하는 넓은 대지에 수십 칸의 건물이 있었으며 당시 가격으로 무려 천억에 달하는 재산이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이 많은 재산을 기부하는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천억이 백석의 시(詩) 한 줄만 못하다”고. 아! 어느 시인이, 어느 지식인이 이런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스님은 자신의 노력으로 세워진 이 넓은 도량에 본인이 머물 방 한 칸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책 속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몇 몇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며칠 동안은 내 마음도 따뜻한 봄날이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창밖을 내다보라. 오늘같이 보름달이 환히 밝은 밤이면 더 좋으리라.

팝콘을 튀겨 놓은 듯 벙글은 벚꽃이 곳곳에 꽃구름을 만들어 놓았다. 그 너머 산기슭에는 애처롭기조차 한 연분홍의 진달래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수줍게 피어있지 않은가! 이토록 밝고 아름답고 따뜻한 봄은 너만의 것도 아니고 나만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봄이어야 한다. 그런데 모두의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고 상대의 잘못을 단죄하는 것만으로는 더더욱 안 된다. 죄를 묻고 그에 따른 처벌은 철저히 하되 그 처벌 속에는 함께 마음 아파하는 연민의 정도 깃들어야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함께 자숙하며 같은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기도 하다.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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