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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死의 갈림길에선 鄕土史 한토막!(終)
-밀양철도교 하행선의 철거 위기 앞에서-
[2019-01-02 오전 11:47:47]
 
 
 

⊙‘밀양강 철교 교각’이 뭐 길래 !
그까짓 것 철교 다릿발이 무슨 대수냐고요? 그것은 500년 후조선 역사에 420여 년간 밀양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 ‘밀양읍성’의 성벽이었고, 밀양강 용두연(龍頭淵)에 이사를 와서 경부선 철도의 ‘다릿발’이 되어서는, 근세사 백여 년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고 가는 자유대한 국민의 다리가 되어, 사랑도 실어 나르고 미움도 실어 날랐으며 기쁨과 슬픔도 차별 없이 실어 나른 철마의 건각(健脚)이었다. 동족상잔의 6.25동란 때는 ‘중공군과 북괴군’에게 밀려서 내려오는 피난민을 어깨에 메고, 밀양강을 건너 준 살아있는 나라의 충신이요 우리 어버이의 효자이다. 전쟁을 겪어보고 피난길을 걸어 본 우리의 부모형제가 감사(感謝)하고 또 감사하는 ‘밀양강 철교’이다. 필자가 ‘밀양신문’ 지면을 빌어서 밀양신문을 읽는 밀양시민과 관계기관 관계자와 뜻 있는 애국자에게 탄원하다시피 올린 내용이며, 그 보다 2개월 먼저 2017년 8월 18일자 ‘밀양신문 2면 상단 기사에 게재된 내용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다시 한 번 더 되풀이 해 본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지정학적으로 삼면이 바다로 싸여있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까지 4대 열강에 싸여 꼼짝달싹 하지 못하는 지구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일찍이 미국의 영향권이 멀었을 때부터 북쪽의 산적(山賊)때와 남쪽의 해적(海賊)에게 시달리고 괴로웠던 옛날이 있어 왔다. 특히 시시때때로 숨어드는 남쪽의 해적들이 부산포 앞바다를 통하여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삼랑’ 두물 머리에서 밀양강을 따라 올라오며 약탈하고 노략질하며 우리 밀양사람을 괴롭힐 즈음,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주민을 보호하기위하여 ‘산성(山城)’을 쌓고 ‘읍성(邑城)’을 쌓아서, 많은 무리들이 쳐들어 올 때면 ‘주민’을 대피시키고, 행정 관청의 집무실을 城內로 옮겨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던 시대가 있었다. 크게는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기 직전에 전국적인 축성(築城)사업이 많이 있었다는데, 그 중 밀양읍성은 그 보다 120여년이 앞선 1479년에 축성되었다 하니, 우리 밀양의 조상님들은 다른 조상님들보다 4世代나 먼저 고생하신 ‘흔적’이다. 그렇다면 이 읍성을 쌓을 때 고을부사나 관리들이 돌을 구해서 쌓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면 너와 나의 조상들이 부역(扶力)을 했을 것이고 그들의 피나는 노고가 城을 이루어 냈을 것이 분명하다. 이 密陽邑城이 ‘밀양사람’을 지켜 온지 420년만인, 1899년 9월8일 체결된 ‘한일 양국공동경영 경부철도합동조약’ 체결에 의하여, 1902년 8월에 구포-밀양 간 ‘철도 부설공사’ 가 착공되었고 밀양강 철교가 가설(架設)되면서 용두산 모롱이 용두연을 가로지르는 하행선 교각(橋脚) 31개 중 24개를 ‘밀양읍성’ 성벽을 허물어 “그 돌로 쌓았다”는 사실이 전해온다. 교각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여 실측은 어려웠지만, 45~50cm정도의 직육면체 바위는 힘센 장정이 한 짐에 질수 있을까 말까 하였고, 교각의 직경은 적어도 5m는 될 것 같은데 평균 21~22단으로 정밀하게 쌓았다. 밀양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던 읍성이 일본으로 ‘조선의 물산’을 실어 나르는 철마의 다리가 된 것이다. 그 돌덩이의 수를 대략 헤아려 볼 때, 성벽의 길이 약 1,415m, 평균높이 2.7m 였다고 하니, 돌덩이는 30만~40만개로 추정되고, 당시의 밀양인구는 남자가 5,522명, 그 중에 노약자를 빼면 군역에 나갈 사람은 2,700여 명으로 본다면 한사람이 감당해야 할 돌덩이는 130~150개, 이를 운반하여 성을 쌓은 우리조상, 이를 허물어 용두목까지 운반해야 했던 사람도 우리조상, 그 님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밀양강 철교 교각’ 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부모형제가 남겨놓은 흔적이요 피와 땀이 젖어있는 유산이니 그냥 두고 보며, ‘조상의 빛난 얼’을 지켜보자는 것이다. 교각이 부서지는 날, 밀양의 향토역사 한토막이 사라지고 ‘바다 건너 일본’은 ‘식민지 수탈의 역사’ 부끄러운 한 페이지가 없어져 주니까 어깨가 한층 더 가벼워질 것이다.

 

⊙한 조각 ‘향토사’가 모여서 한권의 ‘국사’ 가 된다
촛불광란이 쓸고 간 광장에는 태극기 함성이 쉬지 않고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무술년의 立冬 節이다. 만백성을 ‘늑대소년’으로 만들고 있는 ‘정론직필’의 주역들이 역사가 바로서는 그날에는 어떠한 ‘미사여구’로, 소경과 벙어리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가히 걱정스러운 계절이다. 그래도 오곡백과는 영글어 가고 만산홍엽은 찬바람에 흐느낀다. 일반국도에 시속 70km로 달리는 승용차 속에서 후손들의 앞날이 걱정되는 한편, 조상들이 남겨준 문화유산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자랑스럽고 귀중해 보이며 작은 것 하나라도 잘 보존했다가 자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간절함이 더해가는 인생의 가을날, 계절의 늦가을에 추억의 나래위로 老眼을 던져본다. 물론 큰일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발길에 차이는 기와조각 하나, 산골 초가집 부엌 귀퉁이의 질그릇 조각 하나가 눈에 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 문명국의 ‘문화재’는 그 들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품질 좋은 양식이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에 보이지 않을까? 우리는 눈을 뜨고도 볼 줄 모르는 이들에게 볼 수 있는 눈이 되어 주고 들리지 않는 벙어리에게 보청기가 되어 주면서, 티끌과 먼지 같이 여기는 내 고향 내 향토에서 생겨나고 죽어가고, 혹은 땅에 묻힌 조상의 흔적들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鄕土史’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鄕土史를 굳게 지키는 국민이 國史를 지키고 國史를 올바로 지키는 국민이 나라를 지킨다.

이순공/밀양문화원향토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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