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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을 읽고

[2017-11-20 오전 11:10:00]
 
 
 

김지영 흔한 이름이다. 누구나 주위에 지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성들의 이름 중 가장 많은 것이 김지영이란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 딸을 낳은 평범한 주부 김지영은 어느 날 자신이 작년에 죽은 동아리 선배 차승연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추석 때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는 통에 시댁 식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어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김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딸을 얻은 지 1년 만에 이런 증상이 발생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아야 할 일인가.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된 당사자인 여성들에게 출산이 축복만은 아니다.  ‘모성애는 본능이고 닥치면 다 하게 돼 있다’고 들어왔지만, 엄마 노릇은 결코 그렇지 않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이다.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는 데에 배신감이 들 정도다.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오직 아이만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출산 후 독박육아 몇 개월 만에 겨우 집을 나와 1,500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남편이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카페나 다니면서 자기 아이만 위하는  ‘이기적 벌레’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이다.
 

여성혐오 시대에 모성에 대한 신성시도 맘충이라는 혐오도 여성을 옭아맬 뿐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천한 존재인 손녀들이 감히 귀한 손자 것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고 초등학교 선생님은 남자 짝꿍이 김지영을 좋아해서 괴롭히는 것이니 친하게 지내라고 했다. 바바리맨을 잡은 중학교 친구들은 학교 망신을 시켰다며 근신 처분을 받았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위협을 당했을 때 아버지는 고등학생인 김지영의 옷차림과 행동이 조신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 혼을 냈다.
 

대학생 때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한 선배의 말이 “씹다 버린 껌”이라 말할 때도 김지영 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대학 4학년 때 취업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수도 없이 내면서 면접관이 주는 모욕에도 입을 다물어 버려야 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말하지 않는 방법을 택한 건 아니었다. 이런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김지영은 말하는 존재였다.
 

임신했을 때도 특혜 받는다고 조롱하는 남자 동료 말에 화가 나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가 스스로도 너무 힘들어서 그 말을 곧 후회하기도 하고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육아를 위해 결국 직장을 그만둔 김지영을 위로한다며 열심히 돕겠다고 하는 남편에게 “그 놈의 돕는다는 소리 좀 그만 할 수 없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이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말을 해도 상황은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김지영은 점점 목소리를 잃어 갔다.

우리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김지영처럼 눈을 감고 입을 닫아 버린다.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얼마나 숱한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나도 그랬다. 아이를 몇 년 키우고 나서 일을 해야지 그러다보니 30대 중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일을 구하고자 하니 마땅한 일이 구해지지도 않았다. 육아를 전담하는 일이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치부되어졌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일에도 자신감이 없어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그 시간을 활용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여성으로서의 삶은 녹록치가 않고 보편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 싶었다.
 

딸아이가 난 결혼 “안해”라고 얘기하면 결혼은 꼭 해야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는 꼭 낳아서 길러야 된다고도. 하지만 조금 망설임이 생기는 것은 육아로 힘들어 발 동동 구르면서 직장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딸은 엄마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배은희/밀양신문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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