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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적 短想

[2018-05-01 오전 10:43:00]
 
 
 

싱그러운 연두빛 이파리들이 나날이 파스텔톤 초록으로 여물어가고 있는 사월의 막바지. 오월에 있을 갖가지 장엄한 축제를 준비라도 하는 걸까.

간밤엔 장대비가 그치지 않았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는지 새벽녘엔 새들도 오지 않고, 창가엔 오랜 벗 까치조차 결석이다.

‘밤새 내린 비 / 이팝나무 흔들고 / 오월이 성큼’ 문득 하이쿠 한 수를 읊어본다. 하이쿠를 한 수 읽거나 지어서 읊어보면, 현재의 모습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실타래 얽히듯 해결되지 않던 숙원의 문제들도 의외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오래된 연못 / 개구리 뛰어드니 / 물소리 첨벙’ 고요하던 풍경 속으로 뛰어드는 소리는 청각적 이미지를, 마치 그림을 그리듯 눈으로 그려지는 회화적 이미지는, 서늘하게 깨어 있기를 당부하는 메아리와도 같이 영혼을 울린다.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 한 자락이 주는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 뇌리에 남는다. ‘불안’이라는 명제를 고질적 편두통처럼 달고 사는 우리들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잠시 멀리 밀어놓고, 조금은 다른 세계로 시선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시각으로 나의 주위를 조망해 보고 싶을 때, ‘하이쿠’처럼 효과적인 처방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날카로운 첫 키스가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았듯. 한 편의 싯구절이 던지는 메아리를 어찌 셈할 수 있을지. 그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가장 적나라한 지적 유희(知的 遊戱)가 바로 하이쿠가 아닌가 싶다.
 

길고 긴 모가지의 한 마리 사슴인 양, 초록색 줄기 위에 단정히 핀 노란색 튤립이 고고한 자태로 초봄의 꽃시장에 들어서면, 주변의 시선은 단숨에 제압된다. 튤립은 그런 위력을 가진 참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꽃이다. 올봄 초엽에 꽃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지인이 튤립 한 다발을 선물해주었다. 한때 네덜란드에선 튤립 구근 하나에 양 3,000마리, 황소 64마리에 달하는 가격으로까지 치솟았던 적이 있었단다. 대략 20송이쯤 되는 튤립 꽃을 볼 때마다 황소 떼를 거느린 목동이라도 된 듯이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 초봄마다 만났던 노란 프리지어의 상큼한 향기가 주는 기쁨과는 사뭇 다른 기쁨이었다. 꽃에도 걸 맞는 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에 아둔한 내가, 인간의 허영과 허식이 만들어가는 거품경제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차이나 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캄보디아에 11년째 ‘캄보디아희망회복운동’을 펼치고 있는 기회의 학숙에서, 나도 올해로 5년째 봉사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관광객이 하루에만 1,000 명이나 찾아온다는 세계적인 관광지 앙코르왓을 조금만 벗어나면, 학교에도 못가고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하루 1$ 이하로 생활하는 마을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런가하면 톤네샵 수상마을에 널부러져 있는 적나라한 빈곤을 목도할 때마다 인간의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자문을 스스로 해보기도 한다, 흙탕물과 뙤약볕 아래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오는 5월에도 갖가지 후원 물품들과, 배가 없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수상 마을의 가정을 찾아 배를 전달할 것이다. 오지마을의 대안학교를 찾아가 화장실과 교실을 지어주기도하고 학용품, 우산, 비옷, 신발 등을 전달할 것이다.
 

우기(雨期)에 접어들면 잦은 스콜(squall) 덕분에 정신이 번쩍 나기도 할 것이다. 갑작스런 천둥과 번개로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정전이 되어, 급히 숙소를 옮기기도 했던 추억이 새롭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모두 아름다운 한편의 하이쿠처럼 세월 속에 흔적으로 남겨 두었다. 여명이 올 무렵 숙소를 빠져나와서 나만의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그럴 때마다 달고 부드러운 과육의 망고를 한 소쿠리 사서 아침상에 올리는 것이 나만의 기쁨 ‘소확행’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나는 망고아가씨라는 예쁜 닉네임을 얻었다. 38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구슬땀을 마다하지 않고, 봉사활동에 동참하는 ‘캄보디아희망회복팀’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에 언제나 존경심 가득한데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Insight Trip’과 ‘보람’을 동시에 얻었다고. 이번 방문 때는 봉사활동 틈틈이 하이쿠 경연대회를 열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정희숙/(사)기회의학숙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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