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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의 초원(29)

[2018-07-31 오후 3:05:00]
 
 
 
시아버지 파타바트는 가장이 없는 살림을 꾸려갈 수가 없다는 판단이 선 모양이었다.
“얘야, 이제 이백 마리가 넘는 짐승들도 돌 봐야하고, 네 몸도 짙은데…아무래도 우리와 합쳐야 되지 않겠니? 아마 네 동서 안터기와 시숙 야담이 잘 돌봐 줄 꺼다. 우리 부부도 너를 도우마. 네 생각을 빨리 정리해서 연락을 해다오.”
니나의 겔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었다.
“네에, 아버님. 좀 지나고 나서 마음 정리가 되면 그이 친구 돌지씨 편으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니나의 대답이었다.
우르바트의 장례를 마치고 돌지는 부라카와 함께 니나의 겔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니나의 산달이라서 친정이나 시가에 보내고 싶었지만은 니나는 짐승들과도 떠나있기가 싫었고, 우르바트와의 추억이 서려있는 겔을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어했다. 게다가 어린 딸 언어도 부라카를 무척이나 따르기 때문에 남매처럼 지내도록 두지 않으면 아빠 우르바트 생각에 모녀가 함께 우울증에라도 걸릴 처지였다.
돌지는 그런 어느 새벽에 부라카와 쫑을 니나의 겔에 남겨두고, 말을 달려 자신의 겔로 돌아갔다. 그리고 겔에 남아서 돌지를 기다리던 친척아저씨에게 대강의 사정을 말하고 관리를 부탁했다. 별 일거리가 없던 친척아저씨는 일거리와 잠자리가 생겨서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여서 돌지는 안심이 되었다.
돌지는 활과 화살을 챙기고 손도끼도 챙긴 다음에 친척아저씨가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연모들과 주변 환경에 대처하는 비법들을 알려주었다.
“그래,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친척아저씨가 물었다.
“글쎄요, 한 두어해 쯤이라고 할까요. 친구의 아내가 순산을 하고, 혼자 아기를 돌 볼 수 있을 때쯤이라고 생각됩니다마는. 그리고 참 아저씨. 여름 영지 즈오스랑이나 가을 영지 나말자로 옮길 땐 서로 연락을 하지요. 겨울 영지 오울죠후에서는 함께 생활을 해야지요.”
돌지는 마음이 급했다. 행여 니나가 아기를 낳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친척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급히 몰아 니나의 겔로 말을 달렸다. 돌지는 그런 자신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스스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니나의 문제는 니나의 시부모나 친부모에게 맡기는 게 순서가 아닌가? 친구 우르바트가 자기에게 니나의 앞날을 부탁했기 때문에? 단순히 그것 때문에?’
돌지는 달리는 말 위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나는 초록빛 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듯 돌지의 생각도 끝없이 이어졌다.
돌지가 친구의 아내인 니나에 관심을 남달리 가진 것은 아마도 매사냥을 나갔던 때였던 것 같다. 니나를 보고 있으면 그냥 믿음이 생기고 드넓은 초원의 여주인공 같은 존경심이 생겼다. 아내 밀가가 첫 애인이었던 징가와 함께 모습을 나타낸 충격이 커서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그 위기에서 니나는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일을 겪으면서 돌지는 마음속으로 니나를 존경하고 흠모하게 되었다. 아내 밀가에게서는 때 국물이 흐르는 코앞의 살림살이를 느꼈다면 니나에게서는 보다 다른 차원의 귀족다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니나는 단순히 남편의 절친한 친구라고만 생각할까? 아니면 믿고 따를 수 있는 남자라고 생각을 할까? 그건 그렇고 제발 니나의 겔에 도착할 때까지 무사해야 할 텐데 걱정이 되었다. 돌지는 말고삐를 다잡아 쥐고 힘껏 초록파도를 갈랐다.
드디어 초록 저편 끝으로 두 개의 겔이 보였다. 순간, 활짝 웃는 니나와 손을 크게 흔드는 우르바트의 모습이 겔 위로 떠올랐다. 돌지는 가슴이 철렁했다. 순간의 환영이었다.
부라카와 놀고 있던 언어가 함께 손을 흔들고, 쫑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 벌써 해는 노을을 깔고 초원을 저만큼 벗어나고 있었다.
돌지가 겔에 들어서자 누워있던 니나가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아아, 그냥 누워 계세요. 아주머니.”
돌지가 부축할 자세로 급히 말했다.
“잘 다녀오셨어요?”
니나가, 갔던 일은 잘 처리되었는지를 물었다.
“마침 친척아저씨가 따로 할 일이 없다고 해서 겔을 아주 맡겼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렇담 잘되었습니다. 안심이 되네요. 친정이나 시가에서 애기를 낳지 않아도 되고, 또……가축들을 걱정 안 해도 되겠군요. 돌지씨,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짐승들은 내게 맡기시고, 친정에 가셔서 순산을 하시는 게 좋을 텐데요. 그렇게 하시죠.”
돌지가 진심으로 권한다.
“친정에 가서 이쪽 생각에 마음이 쓰이는 것보다 출산 며칠 앞에 엄마를 모셔 와서 여기서 낳고 싶어요. 아, 그리고 참, 돌지씨의 겔을 좀 치워두었습니다. 불편한대로 부라카와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몸도 불편하신데……고맙습니다.”
두 개의 겔을 나누어 쓰게 된 것이었다. 하나는 니나와 언어, 또 하나는 돌지와 아들 부라카가. 이제 부라카가 여덟 살, 언어가 네 살이다. 어디를 보나 다정한 한 가족이었다. 겔을 나누어 쓰는 것 말고는.

정한길(필명정진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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