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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2018-11-13 오후 1:39:00]
 
 
 

한 낮의 가을 햇살이 밖으로 나가자고 자꾸만 손짓을 한다. 이제 시간이 없다고 더 늦으면 추워진다고. 며칠 전부터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묵묵히 견디어 주던 마른 잔디 사이의 서푼어치 엷은 녹색이 서리를 맞고 기운을 잃었다. 이른 아침에 샛강을 따라 걸어가면 물안개 너머로 풀단풍이 아름답다.
 

11월, 한 해의 끝이 저 만큼 바라다 보인다. 모두들 시간이 없다고 종종걸음 친다. 시간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다. 지루하고 힘겨웠던,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시간들조차도 다시 불러 올 수 없는 것이다. 모아 둘 수 없는 것이기에 지나고 나면 항상 허전하고 아쉬움에 가슴 시린 것이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해야 했던 행위들을 놓쳐 버린 것이 얼마나 많았으며, 돌이켜 보면 모두가 핑계였음을 깨닫고도 되풀이 했던 순간들이 또 얼마나 많았던가?
 

건강하고 당당했던 친척이나 지인들이 갑자기 찾아 온 병마를 떨치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버린 후 뒤늦게 참 많이 슬퍼들 한다. 살아서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자주 찾아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 때문이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스스로 그 긴 시간들을 흘려보내 버린 것이다. 시간은 찾을 때 언제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가고 싶은 곳에 가기위해서 또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러나 누군가 무엇을 부탁하거나 시간을 낼 수 있느냐고 물을 때 긍정적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은 시간을 내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강의 장소와 강사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강연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현직에 근무할 때도 그 분의 강의 내용을 자주 적용하기도 하였다. 강의 도중에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의 학교에 시간적으로 촉박하고 중요한 업무가 갑자기 발생하였다면 그 업무를 누구에게 맡기시겠습니까?” 라고. 강의를 듣고 있던 몇 분이 이런 저런 대답을 하였지만 강사가 바라던 대답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분은 파레도(80대20)의 법칙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팔레토(Vilfredo Pareto)가 19세기에 부(富)와 소득(所得)의 유형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부(富)의 불균형 현상을 설명한 내용이다. 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보편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주로 경제를 설명하는 데 많이 쓰이지만 차츰 확대되어 사회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데 자주 활용된다.    

예를 들면, 20%의 운전자가 전체 교통법규 위반의 80%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나 조직에서 20%의 사람들이 전체 업무의 80%이상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그러니 업무 처리로 바쁜 사람은 항상 바쁘고 한가한 사람은 항상 여유가 있으되 단지 바쁜 척 하는 것 일뿐이다. 따라서 중요하고 시간이 촉박한 업무가 생겼을 때는 그 조직에서 실제로 가장 일이 많고 시간이 부족한 사람에게 그 일을 맡겨야 된다는 것이었다. 단, 거기에는 바쁜 사람은 그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렇게 하면 바쁜 중에도 시간에 맞춰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한가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주어진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업무처리가 불가능 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다시 말해 만들어 쓰는 것이 시간이지 그냥 주어지는 시간은 그야말로 그냥 흘러갈 뿐이라는 것이었다.
 

시간을 만들어 쓰되 사용처의 우선순위도 참으로 중요한 듯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면서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 바쁜 일상으로 시간을 내지 못해 건강 검진과 치료의 기회를 놓쳐 병으로 생명을 잃게 된 사례며, 남을 위해 헌신적 삶을 살아오면서 진작 자신의 가족에게 내어 준 시간이 너무 부족해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슬픈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 등.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당하는 안타까운 일도 수없이 많다.
 

11월, 한 해의 끝을 향해 가는 지금 모두들 마음이 바쁠 것이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시간은 붙잡아 둘 수 없으니 바로바로 사용해야 한다. 사용하지 않고 보낸 시간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지 못한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 질 것이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해져야 한다. 시간을 만들어 손으로 쓴 편지 한 장 보낼 곳을 찾아보자. 별 것 아닌 오해나 작은 다툼으로 오랜 기간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먼저 안부의 전화도 해보자. 그리고 너무 멀리만 보지 말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나누어 쓰자. 또 한 가지, 누가 무엇을 부탁하거나 만나자고 하면 꼭 시간을 만들어 그 부탁도 들어주고 만남도 가지자.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은 하지 말자. 그래야20%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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