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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밀양사찰 탐방, 기원정사를 찾아

하늘빛과 물빛이 시리도록 푸른 지난 10일 토요일 아침, 주부기자단은 밀양시 상남면 평촌리에 자리한 기원정사로 세 번째 사찰탐방의 길을 떠났다. 가로수 길은 가을을 한껏 품은 일행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옷을 입고 도열로 반긴다.


기원정사(구. 영구암) 초입, 최선을 다해 물든 가을 숲을 보니 산사의 자연 앞에서 절로 고개 숙여진다. 연화장 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 대적광전을 들러 스님이 계신 곳으로 향했다. 산에 기거를 해서 그런지 산을 닮은 주지스님의 모습이 무심하다. 일행은 일 배를 하고 절을 방문한 이유를 다시 설명 드리고 스님과 친견했다. 신도가 차와 과일을 준비해 놓았고 스님의 처소엔 볕뉘까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기원정사 주지 효관 스님은 법랍 61세로 12세에 출가를 했다. 황해도 월정사에 입산하신 석암스님을 은사로, 스님의 아버지도 범어사 주지로 지내셨고 친척 분들도 불교와 인연이 깊었다. 범어사 재무로, 진해 포교당 주지로, 부산 내원정사 총무스님 등 경력도 화려했다. 특히 범어사 재무시절 피 끓는 청춘 20대에 모든 것을 쥐락펴락 했으니 꼭 설명을 듣지 않아도 생활이 어떠했을지 불 보듯 뻔하다. 절이라고 어디 사바세계와 많이 다를까, 뭇 스님들의 시기와 질투는 당연했고 그로인해 스님도 뼈를 깎는 아픔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지쳐 있을 무렵  토(土)가 들어가는 지명으로 떠나 보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듣고 밀양으로(옛날엔 密城) 오게 되었다.

와서 보니 표충사, 만어사, 홍제사, 무봉사 외 개인 사찰로는 영구암(기원정사)이 가장 오래 되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영구암이 잘 운영되지 않아 절을 일으킬 스님을 찾고 있을 때 밀양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영구암에 온지 30년, 절 공사는 22년간, 조경과 법당 그리고 땅 매입까지 다 할부다. 1996년 9월 1일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1996년 11월 1일에 IMF가 터졌다. 얼마나 힘든 시기였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몇 번의 쓰러짐과 혹한의 고통에도 6천만 원으로 시작해 100억 넘는 불사를 마쳤으니 정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리고 11년 전 낙성식 때 영구암을 기원정사로 명명한다.


눈 먼 참새 아홉 마리가 굶어 죽어야 중 한명 굶어 죽는다는 말처럼 가난에도 연연하지 않고 패기로 우뚝 선 스님은 정말 남달랐다. 그 30년의 세월은 스님으로, 한 사람으로, 우리에겐 파란만장한 산 역사의 증인이다.
공사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절의 사정은 어렵다. 월 일백만원 수입으로 월 오백만원의 지출을 감당해야하는 실정이 그러하다.


속가 나이 73세에도 예전처럼 나머지 부분은 외부의 사찰에 초빙을 받아 번 돈으로 메꾸어 생활한다.


스님은 밀양불교연합회 회장직을 끝까지 사양할 만큼 나서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방식으로 상남면에 불우이웃돕기와 지역사회의 한 모퉁이에 따뜻한 손길을 주고 있다. 건강 체질과 수명도 타고나신 스님이지만 7년 전 심근경색으로 상좌를 두어 절의 모든 재정을 맡긴 적도 있었다. 이제는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작년부터 다시 스님이 운영을 하고 계신다.


지금 기원정사는 12곳 복지단체를 운영하는 내원정사의 법인으로 등록되어있다.


앞으로 어떻게 절을 운영해 나갈지 마지막으로 피하고 싶은 질문을 드렸다.


스님 세대는 그나마 가난과 함께하는 정서가 있어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모든 걸 견뎌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려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절 생활을 바로 하시는 스님들이 많다며 말끝을  흐린다.


절도 중생의 세상살이와 별반 차이 없음을 내심 염려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느 듯 밖은 산그늘로 덮었다. 석가여래가 입적한 후 그의 가르침을 결집하기 위해 모인 오백 명의 아라한, 우리나라에서 여섯 군데만 있다는 오백나한전과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염라대왕 등 시왕을 모셔놓은 명부전의 설명을 듣고 스님에게 일행은 작별을 고했다.  절을 벗어나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스님 모습에서 나는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온전히 사람을 이해한다고 한들, 사랑이라고 믿었다 한들, 남에게 베풀며 살아왔다 한들, 그래도 잘 살아왔노라 한들, 그 모든 행위들은 나를 위한 이해였고 헌신이었으며 자기희생이며 자기부정이 아니었는지를......

김성혜/주부기자

2018-11-21 오전 10:41:00, HIT : 146, VOTE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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