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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오전 9:47:35]
 
 
 

새로 시작된 기해년(己亥年)의 첫 달도 벌써 하순에 와 있다. 숲이 사라진 겨울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겨울은 마냥 쓸쓸하고 메마르기만 할 것 같아도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강가를 걸어보면 줄지어 헤엄쳐 가는 청둥오리들의 모습이며 한없이 높기만 한 차가운 하늘에 일정한 대열을 갖추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참으로 정겨운 풍경들이다. 이른 아침 마당에 나가보면 마른 가지에 앉은 새들의 지저귐은 겨울에 유달리 낭랑하고 아름답게 들린다. 겨울은 꾸밈과 숨김이 없는 단순하고 투명한 계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겨울을 닮았더라면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검지(집게)손가락 손톱 위쪽의 살갗이 조금 터져서 시리고 따갑다. 며칠이 지나도 잘 나아지지 않는다. 작은 상처가 아무는데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도 뜨거운 냄비를 들다가 손가락에 화상을 조금 입었는데 약을 바르고 물기가 가지 않도록 조심을 해도 잘 낫지 않고 며칠을 고생하고 있다. 둘이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제 나이가 있어 작은 상처도 나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하면서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잠잘 때 생긴 얼굴의 베개 자국도 젊을 때는 곧 없어지는데 이제는 오후까지도 그 흔적이 남을 때가 있다. 사람 사는 것도 이와 같아서 나이가 들면 작은 허물도 쉽게 용서받거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불괴옥루(不愧屋漏)- 중국 고전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이다. 옥루(屋漏)란 방의 서북쪽 모퉁이로, 방문이 보통 남쪽에 나 있기 때문에 방의 어두컴컴한 곳을 가리킨다. 아득히 옛날 사람들이 움막집을 짓고 살적에 방안을 밝히기 위해 천장에 구멍을 뚫고 집을 지었는데, 비가 오면 그 곳에 비가 새었기 때문에 옥루(屋漏)라고 했던 것이다. 「불괴옥루」는 방의 어두컴컴한 구석에 혼자 있을 때도 자기 마음에 부끄럽지 않게 지내라는 뜻이다.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라는 뜻인 신독(愼獨)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누가 보건 안 보건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야 이런 저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또 그러한 행동이 몇 번씩 반복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 또한 사람들의 구설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연륜이 쌓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앉은 공인이 되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한 번의 실수로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큰 상처를 안겨 줄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래서 쉽게 잊혀질 수 없고 쉽게 용서받을 수 없다.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해 검증을 거치는 과정인 인사청문회를 보면, 아무 허물도 없이 무사히 통과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 일 뿐 누구나 한 두 번의 잘못은 있었고 그로 인해 청문회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저질렀던 행위들이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해외 연수 중 술에 만취해 가이드를 폭행하고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다 달라고 요구하는 추태를 부린 무지막지한 00군 의회 의원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재정 자립도가 20%에도 못 미치는 기초자치단체의 군의회 의원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해외연수 경비를 책정해서 연수를 나갔고, 남의 나라에서 그런 추태를 보였으니 그 지역 주민들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겠는가? 이 사람들은 아마도 ‘이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우리나라에서 알 수 있을까?’ 라고 생각 했거나 아니면 ‘내가 군의회 의원인데 감히 누가?’라고 생각한 듯하다. 19세기의 생각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이전에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각계각층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숨겨진 불법이나 부도덕한 행위들이 공개되어 실망과 충격을 안겨주는 일들이 자주 있다. 더러는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기도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미 추락한 명예를 되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요즘도 방송을 통해 고위직 인사들의 정당하지 못한 처신들이 밝혀지면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거나 한편 억지 주장으로 변명함으로써 오히려 더 비난을 자초하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의 가르침을 우리 국민은 어릴 때부터 배우고 자랐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지위가 오를수록 겸손해지고 행동거지를 조심한다. 많은 사람의 시선이 지켜보는 곳에서는 물론이고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도 항상 행동을 경계하고 신중히 하여 다른 사람이 알거나 폭로가 되면 망신을 당할 일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제는 비밀이 없는 세상이다. 무심코 한 말과 행동이 즉시 세상에 알려지고 기록으로 남는 초고속 정보화 시대가 되지 않았나! 늘 자신을 수양하는 마음으로 언행을 신중히 하고 겨울 나목처럼 투명하고 단순한 삶을 살도록 노력할 일이다.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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