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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관계로 졸업하지 못한 한봉인, 김상득 선생의 명예졸업장 수여를 바라며
밀양독립운동의 산실, 밀양초등학교를 찾아서!
[2019-01-29 오전 10:30:51]
 
 
 

2019년은 ‘황금 돼지의 해’라며 저마다 부자 되는 꿈을 꾼다. 한편에서는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 이를 준비하는 손길들이 많다.
 

밀양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불어 의열단 창단 100주년임을 강조하지만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있어 1919년이 의미 있는 것처럼 그 100주년을 맞는 2019년도 뜻 깊은 해이며, 우리 고장 ‘밀양’은 더욱 큰 의미를 갖고 맞이해야 하는 해이다.
 

1919년 11월 10일! 10명(13인설, 10인설이 있음)이 모여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행할 것’을 다짐하며 일제강점기 강도들이 가장 두려워하였던 의열단을 창립하고, 의백(단장)으로 약산 김원봉 장군을 선출했다. 이 조직이 탄생하기까지는 밀양인 백민 황상규, 일봉 김대지, 윤치형 선생 등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다.
 

이처럼 의열의 도시로 알려진 밀양은 3.1만세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영남 지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시위를 일으킨 곳이다. 3.13밀양면만세운동을 필두로 밀양공립보통학교(3월 14일), 유림들의 만세운동(3월 15일), 안희원 선생 장례 만세운동(3월 20일), 밀양소년단 만세운동(4월 2일), 단장면 용회동장터만세운동(4월 4일), 부북면 만세운동(4월 6일), 청도면 만세운동(4월 10일) 등 8차례에 걸쳐 만여 명의 주민들이 시위에 동참하였다.
 

첫 만세운동의 시작인 밀양면만세운동은 고종의 인산에 참가하러 상경하였던 석정 윤세주 열사와 윤치형 선생에 의해 기획되고 실행되었다. 탑골공원에서의 시위 현장에 있었던 두 사람은 밀양에 도착하자 스승인 을강 전홍표 선생을 찾아가 논의하였고, 밀양면과 부북면사무소의 등사기를 훔쳐 아북산에서 병풍으로 빛을 가린 채 독립선언서 수천 장을 인쇄하여 김병환의 곡물가게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윤세주 열사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천으로 태극기를 만들었으며, 이는 밀양교회 여신도였던 김시악(황상규 부인), 이복수(고인덕 부인), 김영수(안영의 조모) 등이 중심이 되어 제작하였고, 태극기는 석정의 집에 보관하였다.
 

3월 13일은 음력 2월 12일로 밀양의 장날이었다. 이날을 거사일로 결정한 뒤 오후 1시부터 본격적인 시위에 들어갔다. 석정 윤세주는 높은 단 위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김소지 선생은 나팔을 불며 군중을 독려하였다. 권재호 선생은 ‘조선독립만세’라 쓴 큰 기를 들고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시위 도중 밀양공립보통학교 교정(현, 상설시장)으로 내달려 학생들에게 창문 너머 태극기를 전해주었다. 이에 고무된 어린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다음날인 3월 14일에 160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현재의 밀양초등학교는 문산 손정현 선생이 1897년에 세운 사립 개창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901년에 공립개창학교로, 1911년에 밀양공립보통학교로, 1941년 밀양국민학교, 1996년 11월에 밀양초등학교로 이어져 오고 있다. 정문에는 문산 선생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어 어린 학생들에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은 이 학교 출신으로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서 서훈을 받은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확인하지 못했으나, 강덕수·강인수(본명-강팔수)·김상득·김상이·김소지·박소종·박작지·설만진·양쾌술·윤방우(윤상선으로 개명)·윤보은·윤세주·윤치형·이병호·정동준·최종관·한봉근·한봉삼·한봉인·홍재문 등 20분이다. 이들 중 한봉인과 김상득 선생이 졸업대장에서 찾을 수가 없다.
 

1919년 당시 학교제도는 오늘날과 다르다. 3월 31일 종업식을 하고 4월 1일 새학기가 시작된다. 지금처럼 2학기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4학기로 구분하여 학년을 운영하였다.(당시의 가정통신문이 밀양초등학교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밀양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교무부장 이기종 선생님과 함께 역사기록관의 서류를 검토하기 위해 조사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대정9년(1920)에는 졸업식이 거행되었고 졸업생 명단도 있으나, 대정 10년(1921)에는 졸업생이 없었다. 그리고 대정 11년(1922)의 졸업생은 5명, 대정 12년(1922)은 8명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1922년의 졸업생은 대정 8년(1919)의 졸업생과 중복되어 졸업대장에 기재되어 있었다.

만세운동 당시 4학년은 모든 수업과 교육과정을 다 수료하였기에 만세운동에 많이 참여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참가해도 졸업장을 수여한 듯 졸업대장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학생의 명단을 살펴본 결과 노동운동을 하다 심한 고문으로 숨졌고 애족장을 추서받았던 한봉인 선생이 있었다. 그와 함께 명단에 오른 사람은 58명이며, 이들은 졸업대장에서 찾을 수 없었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당시 3학년 재학 중이던 이들은 그 어느 누구도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졸업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나이는 12~15세의 아동들이었다.

제시된 자료의 470에 한봉인이 3학년 재학 중임을 나타내는 자료가 있다.
그와 함께 공부한 학생은 그를 포함해서 59명다. 그러나 이들은 단 한 명도 졸업을 하지 못했으나 명예졸업장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서훈받은 한봉삼 선생부터 명예졸업장을 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58분에 대한 수여식이 거행되길 바란다. 그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밀양초등학교 역사관에 있는 당시의 수업대장이며 437번부터 495번까지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재적부나 수료대장, 졸업대장에도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일제는 그들에 대한 모든 자료를 삭제해버렸다.

이와 같이 주목해야 할 사실이 또 하나 있다. 3.13밀양면만세운동의 주역이었던 김상득 선생이다. 그는 재적부 확인 결과 약산 김원봉과 같은 날 밀양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학하였고, 약산과 같이 3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다. 두 사람 모두 퇴학 사유는 적혀 있지 않으며 붉은 인주로 퇴학(退學)이라 표시했다. 김상득 선생도 어느 곳에도 졸업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변소에 일장기를 넣고 김원봉 장군과 함께 퇴학한 학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에 선생에게도 명예졸업장이 수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기록은 물론 당시 학생들이 초등학교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목검을 들고 총검술을 연습하는 장면, 모내기와 벼베기에 동원된 광경, 밀양공립보통학교의 전경, 영남루에 있는 일본 신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졸업앨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너무 낡아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아 눈으로만 보았으나 기록의 보존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으며 교육청 또는 지자체에서 이를 보존하는 사업에도 힘써야 함을 아울러 강조한다.
 

‘의열의 도시 밀양’,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앞두고 우리 지역 독립운동가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며, 지역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문학교가 있다는 사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교장과 교사의 제지를 뚫고 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이를 반성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모두 퇴학을 당해 졸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게다가 그들은 지금 우리 나이로 12세에서 15세에 해당하는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조사 중 밀양소년단 사건의 주역이었던 졸업생들도 다 찾았으나, 그들이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했기에 서훈 추서에도 지역민이 온 힘을 쏟아야 함을 새삼 깨달았다.
 

2019년 11월에는 밀양이 대한민국의 주목을 받는 곳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의열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도시! 밀양에서 살고 있음이 자랑스러운 밀양 시민들의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이 현재에서 대한민국 최고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진: 필자가 제시한 8건의 자료사진)

최필숙/밀양독립운동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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