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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

[2019-04-12 오후 1:21:45]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오고 내 고향 남쪽 마을에는 삼월에 벚꽃비가 내린다. 눈부신 햇살아래 꽃 잔치가 열리는 날에는 그 어느 무심함인들 집에서만 머물 수 있겠는가! 봄은 언제나 연분홍의 애잔함이 가슴을 시리게 하는 진달래를 앞세우고 황홀할 만큼 화사한 자태로 우리를 초대한다.
 

주말에 봄나들이를 했다. 고속도로도 아니고 4차선 국도도 아닌 2차선 지방도를 골라 달렸다. 60대인 나는 시속 60km를 좋아한다.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다른 매력은 찾기 어렵다. 그냥 앞만 보고 운전에 집중해서 달릴 뿐이다. 이것저것 볼 것도 없고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는다. 그날은 가끔씩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를 만나기도 하고 어디선가 다가오는 싱그러운 봄기운을 느끼기도 하면서 천천히 국도를 달리는 여유로움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봄은 여유와 따뜻함이 있는 느림의 계절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내 작업실에는 헬스용 실내 자전거가 있는데 속도, 시간, 거리, 칼로리 등이 표시되고 페달  밟기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다. 시간에 맞추기도 하고 거리를 정해서 운동하기도 하지만 주로 칼로리 소모에 목표를 두고 운동한다. 페달의 강도를 높이면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속도를 높이면 시간은 줄어드는데 역시 빨리 지치고 힘이 많이 든다. 그런데 페달의 강도와 속도를 알맞게 조절하여 여유롭게 운동하면 적당한 시간에 너무 힘들지 않게 칼로리 소모를 달성하게 되며 운동이 끝나면 상쾌한 기분마저 얻을 수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항상 주변 사람들을 앞서야겠다는 생각으로 바쁘고 강도 높은 삶을 살아가면 당장은 속도와 성과에서 이길 수 있겠지만 자칫 마음의 체력이 고갈 되면서 삶도 피폐해지고 사람도 잃을 수 있겠다’ 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일본 굴지의 대기업 가네보의 사장을 지낸 미타니 야스토 씨는 말단 사원으로 입사하여 사장과 회장을 지냈으며 이 회사를 일본의 초일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마이너스가 결국은 플러스가 된다’는 경영철학으로 더러는 손해 보기도 하고 속도를 조절하면서 윈윈전략으로 기업을 경영했다.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고 결국은 제로섬에 도달하는 속도전으로는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남을 밟고 일어서야 내가 산다’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모도 그렇고 더러는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들도 경쟁에서 밀리면 끝장이라고 다그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은 손해 보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손해 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그 이익을 먼저 주는 것에 불과하다. 단기적으로 손해 보면 나중에는 사람도 얻고 이익도 챙길 수 있다. 이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최인호의 「상도」중에 나오는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소인은 장사를 통해 이윤을 남기지만 대인은 무역을 통해 사람을 남긴다」는 문장이 생각났다.
 

손해 볼 줄 아는 자세는 결국 남을 앞서기 위해 서둘지 않는 속도 조절의 인내심이 만들어 내는 처세이다. 그리니 멀리 바라보는 안목이 있을 때 실천할 수 있다. 자녀를 손해 볼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장기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설계하도록 조언해야 한다. 인생의 장기목표가 없으면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고 현재의 양보와 속도 조절도 아무 의미가 없어지며 단순한 뒤쳐짐으로 전락할 수 있다.
 

격대교육(隔代敎育). 이는 할아버지가 손자, 할머니가 손녀를 맡아 교육한다는 의미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녀를 교육하면 지나친 욕심에 치우쳐 오히려 자녀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기칠 수도 있다. 즉, 지나친 기대감으로 속도가 느린 자녀의 학습 성과에 화를 내며 질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항상 친구들과 경쟁의식 속에서 학교생활을 하게 되고 반드시 경쟁에서 친구들을 앞서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성적은 일시적으로 조금 오를지 모르지만 멀리 보면 친구도 잃고 가족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실패하는 삶을 살수도 있다. 이 때 지혜와 경륜을 갖춘 할아버지의 교육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령 이씨 영해파 운해 종가 17대 종손인 이용태 씨가 한국 IT 업계의 신화를 이룬 삼보컴퓨터의 창업자가 된 것은 할아버지가 늘 들려주신 가훈 -지고 밑져라- 을 실천한 것이 원동력이 되었음을 예로 들 수 있다.
 

삶의 속도는 나이에 2를 곱한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20대는 시속 40km로 살아가고 60대는 시속 120km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아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엄청나게 삶의 속도를 빠르게 느낀다는 말이다. 시간은 어쩔 수 없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니 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해서 살아가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 따뜻함과 느림과 여유의 계절 봄의 한가운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내 삶의 현재 속도는 몇 km일까?’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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