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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차이

[2019-07-12 오전 9:51:26]
 
 
 

일찍 잠이 깨어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새벽비가 풀 먹인 모시이불 걷어내는 소리를 내며 잔디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정원의 꽃과 나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오늘 아침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뜰에 나갔다. 어제 저녁 무렵까지만 해도 여름 태양과 맞서다가 결국 꽃과 잎들이 고개를 떨구고 날개를 접은 채 아래로 쳐져 있었는데 밤새 비를 흠뻑 맞은 녀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팔을 벌려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비가 주는 이 풍요로움과 평온함이여! 경이로운 아침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철이라고 매일 비만 오는 것은 아니다. 습하고 무더운 것이 장마의 특징이며 여기에 수반되는 불편함도 많다. 하지만 비온 후 구름사이로 살짝 드러나 반짝이는 햇살의 상큼함이며 어쩌다 잠시 보이는 파란 하늘 속의 작은 옹달샘 들. 어디 그 뿐이랴, 비 오는 정원의 넓은 초록 잔디의 싱그러움은 또 어디에 비할 것인가? 올 해 새로 옮겨 심은 홍가시와 모과의 잎이 빈약하여 애를 태웠는데 장마와 더불어 세를 불려 나가고 있다. 그런데 나무 주변에는 때를 만난 듯 풀들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자칫 풀밭이 될까 봐 또 한편 염려스럽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현상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좋음이 있으면 나쁨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같이 따라 온다. 햇볕과 바람은 한 곳으로만 몰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듯이. 그래서 나는 선(善)이고 너는 악(惡)이라고 또는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리다’고 단정 지우려는 것은 그 자체가 잘못이다.
 

어쩌다 몇이서 함께 그림 전시회에 가게 되면 저마다 그림을 보는 관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유화(油畵)의 고전미와 무게감을 높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채화의 맑고 가볍고 선명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수묵담채화의 은은함과 여백의 미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자신의 취향과 철학에 따라 판단할 일이며 거기에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 수 있는 사항은 전혀 아니다. 그처럼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수없이 많은 일들 중에는 맞고 틀리고를 결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항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다만 차이나 다름이 존재할 뿐이다.
  

음식에 대한 취향도 다양하다. 세 사람 이상이 모이면 식당과 메뉴를 결정하기가 어려워진다. 한 분은 여러 가지 반찬이 밥상을 가득 메우는 한정식을 좋아하고 또 한 분은 한 가지 주메뉴를 중요시 하고 나머지 따라오는 찬들은 간단한 것을 좋아한다. 또 한 분은 밥 보다는 면 종류의 음식을 좋아한다. 이렇게 음식의 기호가 서로 다르니 여럿이 함께 식사할 때는 식당 정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은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기 마련이다. 우리 한국의 식당은 이런 때를 대비하여 열 가지가 넘는 식사 메뉴를 준비해두는 곳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한 가지 음식도 제대로 된 맛과 품격을 찾기는 어렵다. 나는 개인적으로 반찬의 가지 수가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한두 가지의 찬이라도 제대로 맛을 내면 만족한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뚜렷한 이유가 있다. 수십 가지의 찬이 나오게 되면 밥상이 빈틈없이 꽉 메워지고 심지어는 수저를 제대로 놓기도 어렵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식사 중에 음식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생기고 그릇을 잘 못 건드려 넘어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식탁위에 빈 공간이 넉넉히 있는 것이 마음 푸근하다. 아울러 식사하는 즐거움도 한결 더할 수 있다.
 

집을 꾸미고 정원을 가꾸는데도 차이가 있다. 30평의 아파트를 40평처럼 쓰는 사람이 있고 40평의 집을 30평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정리 정돈에 우선순위를 두느냐 아니면 가꾸고 꾸미는 데 우선순위를 두느냐 하는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것도 이와 똑 같다. 다만 실내와 실외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는 그야 말로 개성에 따라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나이가 좀 들었다면 좀 간결하고 넓은 공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복잡하고 어수선함은 나이든 사람들이 필요치 않은 것들을 모아 둔 어쩌면 먼지 쌓인 세월의 흔적쯤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곤도마리에(정리 컨설턴트. ‘정리의 마법’ 저자)는 집에 둔 물건을 보고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했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이나 옷들은 과감히 버리라고 했던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보다 더 적극적인 버리고 비우기의 권장이다. 집에 들어차 있는 물건들 중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 또한 온전히 옳은 주장이고 이와 반대되는 삶의 태도는 틀렸다고 단정 지울 수는 없다. 이를 받아들이고 말고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결정될 사항이다.
 

부부가 단 둘이 살아도 이 것 저 것 결정할 일도 많고 때로는 서로 생각이 달라 가끔 티격태격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이 서로 다를 뿐 맞고 틀린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일은 어렵지 않게 결정이 난다. 우리 부부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는 서로의 생각에 별 차이가 없다. 새 집을 지어 이사 와서 사 년째 들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정원에 꽃과 나무들이 제대로 어우러지지 않아 많이 허전했는데 올 여름에는 백일홍을 비롯해 많은 종류의 꽃들이 종류별로 무리를 이루어 화려함을 뽐내고 있고, 나무들도 생각보다 잘 커가고 있다. 오늘도 귀염둥이 강아지 두 마리가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뒹굴고 있다. 모두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살아있는 생명체 들이다. 우리 부부가 같은 생각으로 저들을 잘 보살피고 있음을 아는 듯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이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여름날의 정오쯤이다.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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