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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2019-08-05 오전 10:43:25]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요즘에 자주 생각나는 구절이다. 인간에게 있어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포괄하는 의미는 과연 어디까지의 영역일까.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 흘러넘치는 정보에 대한 심의규정은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에 신빙성 또한 모호하다. 귀는 닫고 눈과 입만 열어 놓은 형국이 아닐까 하는 자문도 해본다. 가방끈의 길이를 늘이고자 쉴 틈 없이 바쁜 사람들도 보았고. 배움과 앎에 대한 갈증으로 여러 개의 가방을 들고 뛰는 사람들도 본다. 본질의 무의미성과 유의미의 충돌을 돌파해낼 틈도 없이 그저 마구 뛰는 좌충우돌은 아닌지. 21세기형 리더의 핵심 능력이 무엇인지 참으로 의아하다.


 22년 전부터 ‘문해력’의 가치와 의미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인문학의 중요성과 자원봉사, 리더십, 체험교육 등을 실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현해온 사단법인 기회의학숙의 혜안이 새삼 경이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문해력’이란 무엇이며 왜 문해력을 배양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와 지적 능력 향상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심도 있게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한 마디로 글을 읽고 뜻을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문해력(文解力)인데, 글을 읽고서도 그 뜻을 알지 못 한다면 까막눈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최근 ‘기생충’이라는 영화의 한 줄 평을 놓고 갑론을박 하는 모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을 차치해놓고, 어쩌면 그렇게도 적확하게 한 줄로 평가를 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이모 평론가의 한 줄 평은 놀라웠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그 평론가의 한 줄 평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었다. 특히 언어영역 1등급인데 ‘명징’과 ‘직조’를 처음 보는 단어라며 굳이 그렇게 어렵게 쓸 이유가 무엇이냐며 따지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어의 70퍼센트 이상이 한자어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지적들은 다소 억지스런 감이 없지 않았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이보다 명확하고 명료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좀 엉뚱스런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필자에겐 재미난 경험이 하나 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버린 야속한 지인과의 사연이다. ‘언니’라고 부르며 자주 어울렸던 이웃이었다. 그 언니에겐 늦은 결혼에다 겨우 얻은 외아들이 있는데 공부엔 관심도 없고, 멋 부리기에만 골몰하는데 대학은 보내야지 않겠냐며 나에게 상담을 해왔다. 당시 나의 큰아들과 같은 고3 입시생이었는데 녀석은 한글을 읽고도 뜻을 잘 모르니 언어영역 점수가 형편없다고 수능을 두 달 쯤 앞두고 나에게 통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쪽집게 전문 강사도 아니고 더구나 당시 나 또한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니 모시고 직장 생활에다 문학활동까지 하느라 무척 바쁜 시기였던 때라 한사코 고사했지만, 언니의 간절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퇴근 후에 주 2회 2시간씩 녀석을 책상머리 앞에 앉혀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등생 친구의 엄마라는 사실과 ‘시인’이며 ‘평론가’라는 후광효과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녀석은 나를 신뢰했다. 놀랍게도 수능성적이 몇 등급이나 올렸다나. 4년제 대학에 외아들을 입학시켜 준 은인이라며 언니로부터 용돈을 두둑이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독서 수준과 글쓰기 교육의 실태에 심각한 절망을 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심각성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한자문화권에서의 언어습득은 한자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예컨데 일본어의 경우 ‘私は日本語の勉强をします’라고 하면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전혀 몰라도 한자만으로 일본어 공부라는 뜻을 짐작할 수 있고, 중국어의 경우도 중국어를 전혀 모르고도 ‘帶我去學校’ 한자만 조금 안다면, 학교에 간다는 의미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십 수 년 전 중국 북경의 어느 대학에서 1년간 연구교수로 있던 친구네를 방문했다가 국제학교에 다니던 친구의 아들을 대신 픽업할 일이 있었다. 운전사 아저씨와 나 둘만 남았다. 그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고 나는 중국어를 거의 못 하니 궁리 끝에, 나는 종이에다 ‘學校’라고 적어서 보여드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하던 그 멋장이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무사히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던 헬렌켈러의 ‘어둠’과 ‘고요’를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20세기 가장 뛰어난 수필로도 꼽히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와 같은 간절함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해독해야 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은 분명 다를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텍스트나 이미지, 혹은 영상 정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해석하고 해독하여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결국 읽고, 쓰는 활동들로 연마해가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의 꾸준한 학습만이 뇌 속에 깊이 생각하는 세포를 심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의 말. 요즘 신입생들은 영어보다 국어 실력이 더 문제라고들 한다. 2019년 기회의학숙에서 변화전략으로 내세운 ‘글쓰기는 뇌의 근육운동이다’를 눈여겨보자.

정희숙/(사)기회의학숙총무이사

 
 
 
박정애 사회의 아픔을 꼬메는 글 감동입니다. 2019-08-0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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