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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일락서산(日落西山)

[2019-11-01 오후 5:04:04]
 
 
 

유종(儒宗)의 고향(2)

 

서기 1431년 세종 1368일 경자일(庚子日)에 밀양 고을의 서쪽 부북면 서대동리[提大里] 한골 후산 기슭에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탄생했을 때, 장차 조선 유학의 태두로 우뚝 서리라는 전조(前兆)였던지 사흘 동안 단물이 흘렀다는 감내천.

지금도 그의 향리인 제대리 한골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을 감천(甘川)이라 하고, 마을 이름을 감천리(甘川里)라 지칭하게 된 것도 거기서 유래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내천이 흐르는 제대리 한골 마을은 점필재 선생의 출생지이자, 선생의 진외종손이면서 동시에 문하생이기도 했던 동산리 여흥 민씨 문중의 오랜 자랑인 오우선생(五友先生) 다섯 분이 출생한 곳이기도 하였다.

오우선생(五友先生)은 효도와 우애와 학문으로써 성종(成宗)과 연산군(燕山君) 시대에 명성을 크게 떨쳤던 욱재(勖齋) 민구령(閔九齡) 선생을 비롯한 경재(敬齋) 민구소(閔九韶), 우우정(友于亭) 민구연(閔九淵), 무명당(無名堂) 민구주(閔九疇), 삼매당(三梅堂) 민구서(閔九敍) 등의 오형제를 일컫는 말이었다. 오우선생의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민제(閔除)로서 고려 말의 삼은(三隱) 중의 한 분이었던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의 문인이자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부친이기도 한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 선생의 사위였고, 부친은 그분의 유복독자 (遺腹獨子)로서 외가(外家) 곳인 이곳 제대리에 처음 복거(卜居)한 진사(進士) 민경이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특히 한골에는 중산의 14세 조인 제(), 15세 조인 경(?)을 비롯하여 욱재, 경재(敬齋), 무명당(無名堂) 등 오우 할아버지들의 유택이 있는 곳이어서 중산의 오랜 혈통의 고향이자 학문의 고향이나 다를 바가 없는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자기네의 자랑스러운 오우 선생 다섯 분을 이곳과 따로 분리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점필재 선생의 막내누이 몸에서 태어난 오우 선생 다섯 형제들은 일찍이 그 진외종조부 (陳外從祖父)의 문하에서 학문과 인격을 배우고 닦으며 성장하여 동방 오현(東邦五賢)으로 문명을 떨치던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을 비롯하여 김일손(金馹孫), 권오복(權五福), 남효온(南孝溫), 조위(曺偉), 유호인(兪好仁) 등과 같은 문생들과 함께 명망 높은 유현(儒賢)이 되는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그분이 천수를 다했을 때 어린 유자녀를 대신하여 장례를 치러 드렸음은 물론이요,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하였을 때도 사태를 수습하고 유골을 이장하는 등, 생전과 사후에 걸쳐 사제와 인척으로서의 도리를 다함으로써 보은의 본보기가 되었으니, 조상 대대로 점필재 선생과 오우 선생 모두를 학문과 삶의 사표로 삼아 그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저마다 노력해 온 결과로서 오늘날까지 자기네 문중의 풍속과 내력이 이 정도로 유지되고 있음도 그분들의 큰 유덕(遺德)으로 여겨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중의 오랜 숭모 대상인 그 오우 선생 다섯 분이 시작(詩作)으로 음풍농월(吟風弄月)하던 곳이 바로 경상좌도의 영남대로(嶺南大路)와 접속하는 수운 교통의 요충지인 삼랑진 낙동강 가의 후포산 벼랑 위에 있는 오우정(五友亭) 정자요, 향중의 후학들이 그분들의 높은 학덕과 깊은 효우(孝友)를 기려 춘추로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그분들의 사후에 오우사(五友祠)와 함께 향중의 유림들이 세운 서원이 바로 삼강서원(三江書院)인 것이다.

그리고 점필재 선생을 향사하는 예림서원 또한 그곳 오우진 나루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반나절이면 와 닿을 수 있는 제대리 감내 마을의 인근에 있으니, 그곳의 출입은 예림서원 부설 경학원에서 학문을 닦은 유생인 중산에게 있어서는 학문과 생활 속에서 흐트러진 정신을 다시 가다듬는 정신적인 수양의 일환인 동시에 가문의 영원한 영광의 표상인 그분들 모두를 기리는 경건한 숭모의 의식 절차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감내까지 간다는 바람에 김 서방은 중산의 말고삐를 잡고 앞에서 타박거리며 걸어가는 나이 어린 말구종 춘돌이를 자신이 타고 가는 나귀 등에다 올려 앉힌다.

서방님, 예림서원에 들렀다가 가실랍니까요?”

나귀에 태운 춘돌이를 뒤에서 한 손으로 껴안고 가면서 김 서방이 묻는다.

지난날, 중산이 자기네 문중 안에 있는 학당에서 한학 공부의 기본 과정을 마치고 책씻이까지 끝낸 후에 삼강서원의 강학 과정을 거쳐 이곳 예림서원의 경학원에 정식으로 입문하면서부터 그를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수없이 서원 나들이를 했던 김 서방이고 보니 대뜸 그렇게 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예까지 온 김에 <감내 게줄 당기기>나 구경하고 가세나.”

그러면서 중산은 춘돌이를 나귀 등에 태우고 가는 김 서방을 거나하게 돌아본다. 먼 길을 간다는 말에 어린 아이부터 먼저 챙기는 그의 충직한 모습이 여간 미덥지가 않은 것이다.

서방님께서 <감내 게줄 당기기> 구경을 하시게요?”

김 서방은 뜻밖이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감내 마을은 경술병탄이 있기 전까지 남정원의 둔토를 경작하면서 조상들이 살았던 그의 고향인 것이다. 원이란 역과 역 사이, 또는 역 부근에 공용으로 여행하는 관원들을 위하여 설치한 일종의 국영 여숙소 같은 곳이었는데, 원집에는 원주(院主)를 두어 소속된 전답을 경작하여 경비를 충당케 했던 것이다.

, 나는 민초들의 그런 놀이를 구경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 아니 그런 것은 아니옵고. 날이 저물어서 지금 가게 되면 게줄 당기기가 모두 끝나 버렸을지도 모르는데, 허탕이라도 치게 되시면 우찌하시게요?”

해가 아직 서산 위에 저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럴 리가 있겠나!”

중산은 느긋하게 읊조리며 서산마루에 걸린 저녁 해를 바라본다. 멀리 부북면 일대가 지평선 위의 산 그림자처럼 아른거리는데 그래도 그곳이 한눈에 들어오자 오월초의 하루해가 생각보다는 길게 느껴지면서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감내 게줄 당기기>는 원래 농한기인 정월 대보름날에 행해지는 민속놀이로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긴 시간에 걸쳐 행해진다는 사실을 중산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가도 <감내 게줄 당기기>의 본놀이인 <게줄 당기기>는 몰라도 대미를 장식하는 <뒤풀이> 춤사위만은 충분히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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