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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오월의 낙동강역

[2020-05-15 오전 11:19:32]
 
 
 

졸고 있는 백열등 아래 / 우리의 기억들이 걸려있고 / 아무도 없는 역사(驛舍)의 좁은 문으로/ 오월의 바람이 지나간다 / 벚나무 잎 사이로 / 오래된 불빛 다가와 / 청춘의 아픈 모습을 / 막걸리 잔에 새겨놓고 / 둑 넘어 찾아 간 강물은 / 모래밭에 별을 넘겨준 채 / 달빛만 머금고 있다 / 느려서 게으른 우리의 간이역은 / 이 밤도 / 모든 것을 내려놓고 / 떠나게 했는데 / 애잔한 그리움 같은 것은 / 곳곳에 숨겨 두었다.(낙동강역. 정상진)

 

낙동강역()1906년에 처음 영업을 시작했고 1962년에 현위치(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15-1번지)에 자리 잡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여객수가 줄어 2004년에 무배치(역무원이 없는)간이역이 되었고, 2010년에는 무정차 간이역이 되었다가 그해 11월에 역사(驛舍)가 철거되었다.

몇 주 전에 김해를 다녀오다가 삼랑진 철교를 지나왔다. 잠시 서행하면서 강물을 바라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그대로 인데 무심한 세월이 나만 이렇게 바꾸어 놓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내 젊은 날의 기억들을 되새겨 보고 싶어졌다.

낙동강을 건너면 바로 낙동강역()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옛 모습을 볼 수 없고 그냥 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찾는 이가 거의 없는 듯 했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낙동강역의 옛 모습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려 보며 기억의 단편들을 연결해 보았다.

마산교육대학 재학 시절 삼랑진 낙동에 국어과 동기생 한 명이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친구 집을 몇 명이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갔고 해질녘에 낙동강역에 도착했다. 그날 우리는 하루 종일 졸고 있었던 모습의 작고 한적한 시골역의 평화스러움, 희미한 백열등의 조명, 그리고 주변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 강둑에 서서 멀리 낙동강의 석양을 바라보았고 더 없이 넓게 펼쳐진 모래밭(지금은 모래밭이 없어지고 강변 공원으로 바뀌었다)을 맨발로 걸어 보기도 했다. 그 후 우리는 가까운 곳이라 기차를 타고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낭만의 데이트 코스로 낙동강역을 제 1번으로 추천하곤 했다.

그날도 지금처럼 푸른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늦은 오후에 마산역을 출발한 완행열차는 구마산역을 지나고 진영을 지나 저녁 무렵 낙동강역에 닿았다. 그날은 철저히 혼자였다.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떠났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그 누구도 가까운 사람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혼자서 훌쩍 떠나 모르는 누군가에게 넋두리 같은 슬픔을 토해 내면 조금은 마음의 위로가 될 것 같은 날이기도 했다. 그날은 어머니 장례 절차를 모두 끝내고 외로운 내 자취방으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어머니는 그 해 58일 어머니날(그때는 어버이날이 아닌 어머니날로 불렀던 기억이다)에 돌아가셨다. 졸업을 했지만 임용순위가 밀려 1년 넘게 발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교사가 되어 월급을 받으면 어머니께 해드리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어머니는 교사가 된 막내아들을 보지 못하고 가셨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몇 달만 먼저 발령을 받았더라면하는 안타까움과 송구스런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혼자 찾았던 낙동강역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몇몇의 시골 아낙들과 함께 기차에서 내려 역의 대합실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었다. 아직은 어둠이 내리지 않은 때. 미리 켜 둔 희미한 백열등 한 개가 우리를 맞았다. 좁은 문을 지나니 오래된 아름드리나무 몇 그루가 막 내리기 시작하는 어둠을 이고 서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스레트 지붕의 작은 가게가 하나 있는데 할머니가 삶은 달걀과 항아리에 담긴 탁주를 파는 곳이다. 할머니는 전기를 아끼느라 아직 전등을 켜지 않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니 불을 켜셨다. 이전에 한두 번 그 가게에 들러 막걸리도 마시고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눈 적이 있어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낙동강역을 찾은 것은 막걸리에 조금은 취해서 불효한 자식의 슬픈 마음을 할머니 앞에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우째 총각 혼자여? 전에 같이 왔던 처자는 우짜고. 영 얼굴이 많이 상했네.” 하시던 할머니 첫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날은 할머니 앞에서 술주정도 제법 했던 것 같다. 술주정이래야 그냥 엄마 생각에 울기도 하고 할머니에게 어리광 부리듯 이런 저런 얘기를 드렸던 것이리라. 한 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강둑에 올라가서 멀리 철교를 바라보다가 또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강 건너 작은 마을의 희미한 불빛을 보기도 했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고 가끔 달빛에 깊은 속살을 드러내는 강물의 비수 같은 번쩍임이 보이기도 했다. 하늘에는 별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밤처럼 많은 별을 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막내아들은 어머니와의 이별이 너무 슬펐지만 그 별빛이 쏟아지는 강가의 언덕에서 어머니를 영원히 보내드렸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 김광섭)

 

그렇게 나는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또 시간이 지나 교사가 되었고 이제는 그 직도 은퇴하였다. 수많은 날들이 지났지만 아직도 5월이 되고 어버이날이 되면 이렇게 좋은 계절에 병실에서 고생하시다 예순둘의 이른 나이에 가신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낙동강역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 곳을 지나면 무슨 빚이라도 진 듯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보곤 한다. 언제 한 번 그 강둑에 서서 석양을 보다가 어둠이 내리면 하늘의 별을 보고 달빛에 반짝이는 강물도 보고 싶다.

삶은 달걀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할머니와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만 ... .

정상진/전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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