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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온 손님(7)

[2021-02-03 오후 5:21:04]
 
 
 

3장 우국(憂國)의 밤

 

북쪽에서 온 손님(7)

 

김원봉 군과 윤세주 군이 둘이서 같이 밀양 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때였으니까, 최수봉 군의 의거 사건이 일어나고 일 년도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이었나 봅니다. 아마도 그때 김원봉 군의 나이가 열네 살이고, 윤세주 군은 열두 살 때의 일이었을 겝니다. 경술국치 이후에 왜놈들이 첫 번째로 맞이한 명치천황의 생일인 1911113일의 천장절((天長節)에 강인수, 윤세주 군과 함께 일장기를 학교 변소 분뇨통에 처넣은 희대의 쾌거를 일으켰던 것이지요! 천장절이라고 하면 왜놈들한테는 가장 대표적인 국경일이 아닙니까? 그놈들이 우리 조선을 집어삼킨 지 꼭 1년 만에 식민지 땅 조선에서 처음 맞이한 천장절이었으니, 그놈들의 감회가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치르게 되어 있는 그 흥분되고 감격스러운 국경일 날, 각급 관공서와 기관장들은 물론 일반 하객들까지 대거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게 될 밀양공립보통학교 운동장 행사장 앞의 국기 게양대에 자랑스럽게 펄럭이고 있던 일장기가 우리 대한의 어린이들 손에 의해 그곳 변소의 더러운 똥통 속에 형편없이 처박히는 희대의 사건이 터져 버렸던 것이지요! 그것도 나이 어린 보통학교의 어린이가 그 혐오스러운 일장기를 사정없이 끌어내려다가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변소의 똥통 속에 처박아 버리는 거사를 감행했으니, 이 얼마나 장쾌하고도 포복절도할 일입니까?”

뉘 아니랍니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 때부터 알아본다고, 사실 그런 일은 장차 대단한 독립군이 될 어린이가 아니고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가뜩이나 들떠 있던 국경일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그 후의 상황이 어찌 되었겠습니까? 전국 방방곡곡에 신궁(神宮)을 차려놓고 궁성요배(宮城遙拜)다 뭐다 하여 경축일 축하행사로 들떠 있던 왜놈들 모두가 불시에 오물을 뒤집어쓴 듯이 발칵 뒤집어진 것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범인이 다름 아닌 조선의 코흘리개 어린이로 밝혀지자 다시금 아연실색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비슷한 일로 먼저 퇴학당한 최수봉 군의 경우처럼, 이 친구들도 왜놈 교장한테 붙들려가서 갖은 협박을 다 당한 것도 또한 최수봉 군의 경우와 똑같았지요! 하지만 김원봉 군은 끝까지 자백하기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버티다가 왜놈 교장한테 죽도록 얻어맞고 강제퇴학 처분을 당했고, 뒤에 남았던 윤세주 군과 강인수 군도 더러운 왜놈들 밑에서는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똑같이 자퇴한 뒤에, 우리 동화학교로 옮겨와서 시생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잠시 말을 중단하고 좌중의 윤세주와 강인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 을강 선생은 기대에 찬 어조로 이렇게 얘기를 마무리 짓는 것이다.

이 친구들이 어린 나이에 조선 어린이의 항일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나, 우리 동화학교로 옮겨와서 공부를 계속하기로 한 것이나, 모두가 다 최수봉 군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시생으로서는 이 네 명의 제자들이 일으킨 의거 사건에 대해서는 따로 분리하여 생각 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과연 그렇겠군요! 그런데 군사 강국인 독일 유학의 꿈을 꾸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김원봉 동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게 대단하던 최수봉 동지는 변방의 광산촌을 떠돌면서 날품팔이를 하고 있다니, 어찌하다가 일이 그 지경이 되었는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최응삼은 잔뜩 기대를 하고 왔던 최수봉이 척박한 광산촌의 날품팔이가 되어 있다는 바람에 크게 실망을 했는지, 아주 아쉬워한다. 그러나 을강 선생은 오히려 더욱 열을 띠어 가면서 그런 최수봉에 대한 자신의 기대감과 확고한 믿음을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피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을 겝니다! 그 최수봉 군은 생각이 깊고 의지가 굳은 아이였으니까요!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간에 어린 시절에 가슴속 깊이 심어 주었던 그 애국 애족하는 마음만은 언젠가는 큰일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일취월장으로 커 가고 있을 겝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굳이 작업이 험하기로 소문난 광산촌에 가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을강 선생은 최수봉이 굳이 첩첩 산골의 사금광에 가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단순한 생활의 방편이 아닌, 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금광이라면 바위 속의 금맥을 찾아서 무시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그 속에 폭약을 쑤셔 넣고 발파 작업을 일상적으로 벌이는 위험천만한 곳이 아니던가!

그 친구는 부족한 시생의 훈도를 받다가 우리 동화학교마저 왜놈들 때문에 폐교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그 길로 동래 범어사로 가서 우여 곡절 끝에 그 절간 안에 있던 명정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속에 품은 뜻은 반드시 관철시키고야 마는 강골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폐허가 되어 잡초 더미 속에 파묻혀 버린 모교 동화학교를 둘러보며 울분을 삭이고 있다가 자기가 다니던 마산리 교회의 한 장로님의 도움을 받아 평양으로 가서 많은 애국지사들이 포진해 있던 숭실학교에 편입학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애국 민족교육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 숭실학교마저 그가 흠모하던 수많은 우국지사 스승들이 일제 당국의 갖은 탄압으로 줄줄이 학교를 떠나게 되는 바람에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으니 수봉 군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연속되는 민족학교의 수난 얘기를 하다 보니 절로 감정에 겨워 목이 메여 오는지, 을강 선생은 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다시 말을 잇는다.

허나, 시생은 그 제자가 어디에 가 있든지 결코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큰일을 한 번쯤은 해 내고야 말게 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을강 선생은 그렇게 강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정대재/소설가 

 

정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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