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1.4.12 12:20
 
전체 사회 행정 교육 경제 정치/종교 문화/역사 복지/건강 스포츠/여행 밀양방송
 
박스기사
 전체
 살며 생각하며
 시가 머무는 자리
 마음의 창
 재약산의 숨결
 소설
 현지르뽀
 歷史속의 密陽人
 문학/예술
 가치핸들
 기획
 社說
 기고
 인물
 역사의 향기
 미담 속으로
 책이야기
 건강시대
 대선을 향한다
 총선을 달린다(밀양)
 발언대
 독서 산책
 밀양아리랑글판전
 낙숫물소리
  가장많이본뉴스
갈수록 태산 부
산수유 꽃
피부잡티와 뜸(
봄바람 타고 밀
밀양교육지원청,
밀양시 클라우드
밀양 적십자봉사
밀양아리랑 둘레
봄을 캐는 여인
쇼 윈도우 전략
밀양시, 시정
밀양시, 토속어
밀양시 ‘스마트
밀양시, 감염취
밀양시, 아동·
띵동~, 밀양시
百萬 賣宅 ,
밀양시, 특별교
밀양 연극인 극
인간과 기계문명
 
뉴스홈 >기사보기
오리무중(五里霧中)-2

[2021-03-26 오후 3:59:37]
 
 
 

4장 운막향(雲幕鄕)의 후예들

오리무중(五里霧中)-2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의 폐지와 함께 국가의 정규 교육을 담당하였던 향교의 교육 기능이 폐지되면서 동래 향교의 명륜당은 지역 유림들의 유회(儒會) 장소로서의 기능만 담당하게 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일본식 신학문을 거부하는 일부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 향반의 자제들은 아직도 청암과 송암처럼 동래 향교에서 교수(敎授)와 훈도(訓導)로 봉직했던 명망 있는 유학자들로부터 사적으로 한학 지식을 쌓고 있는 축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동료들마저도 아주 줄어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용화 할머니 살아생전에는 우리 문중의 개화·개방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층암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왜 그런 뜻을 편지에 적어 보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나

농감(農監) 곽 서방을 대동하고 삼랑진의 안태로, 행촌으로, 때로는 멀리 수산과 초동면까지 모내기가 끝난 소작지의 추곡의 작황실사(作況實査)를 다니면서 용화 할머니와 청암의 생각에 젖곤 하던 어느 날 저녁 때였다.

안사랑의 김 영감이 식전 댓바람에 용화당 노마님의 부름을 받고 격장 중문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는 말이 안사랑 마당에서 비질을 하고 있던 하인의 입을 통하여 중산의 귀에 들어왔다. 김 영감이라면 일찍이 승당 할아버지께서 현직에 계실 때 한양까지 오가며 그림자처럼 뒷바라지를 했던 원로 하인으로서 지금은 안사랑의 영양재 문간방에서 용화 부인을 도와 옛 상전의 유훈(遺訓)과 유업(遺業)을 받들며 영동 어른의 외유 때나 가끔 수행하고 다니면서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한일합방 때 의거 순절한 승당 할아버지의 충복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용화 할머니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신 게로구나!’

중산은 직감적으로 그런 느낌이 가슴에 왔다. 그 바람에 조반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자신의 거처 바깥의 누마루에 나와 서성이며 안사랑 영양재 쪽을 연신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식사를 끝내기가 바쁘게 의관을 갖춘 김 영감이 남들의 눈을 피해 일각대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후원을 가로질러 말과 나귀가 있는 축사 쪽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것이었다.

그의 출행을 눈치 챈 중산이 밖에 있던 하인을 불러서 행선지가 어디인지 알아보고 오라고 일렀더니, 성내까지 나가서 몇 군데 둘러서 지중한 임무를 받들고 오라는 용화당 노마님의 엄명이 떨어졌다는 말만 남긴 채 행랑에 있던 손자 춘돌이를 불러내어 서둘러 나귀에 올라타고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중한 임무를 띠고 성내로 나갔던 김 영감은 그날 밤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역시 감감무소식이었다.

김 영감이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이날도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려고 새벽같이 축사 뒤뜰 채마밭 쪽으로 기지개를 켜며 나서는데, 땅거미가 미처 가시지도 않은 옅은 안개 속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이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대체 누구일까.

일각대문이 있는 축사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자세히 살펴보니 찬모(饌母)의 딸 삼월이었다. 중산은 제 어미를 닮아서 손끝이 여물고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던 부인의 말을 떠올리며 가던 길을 멈추고 그녀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본다. 다른 일꾼들이 기침을 하기도 전에 새벽같이 채마밭으로 나와서 대나무 소쿠리를 옆에 끼고 아욱과 근대며 상추 잎을 따서 담는 그녀의 손놀림이 야무지고 날래기 그지없다.

여문이가 죽은 지도 벌써 삼년이 지났는데, 김 서방을 저렇게 언제까지나 넋 빠진 홀아비 꼴로 살아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겠느냐?”

김 서방이 산후풍으로 죽은 아내의 제삿날 밤에 가장골 무덤가에 가서 밤을 하얗게 새운 뒤 새벽녘에 두 눈이 퉁퉁 부어서 돌아왔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의 처지를 걱정하던 모친의 말이 무심결에 떠오른다. 중산도 심지 굳은 자기의 충복을 생각하는 어머니 여강 이씨(驪江李氏) 부인의 의중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적당한 때를 기다리면서 차일피일 하고 미루어 왔던 그였다.

죽은 아내에 대한 김 서방의 마음이야 세월이 약이 될 게 뻔하지만, 꽃다운 처녀인 삼월이의 마음이 어떠할지 몰랐는데, 지난 단옷날 저녁 감내 마을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행랑 마당에서 을순이를 데리고 놀다가 김 서방을 보고 반기던 모습으로 보아 그에 대한 감정이 예상 밖으로 꽤 호의적임이 밝혀졌으니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중산으로서도 여간 놀랍지 않은 것이다.

물 오른 실버들처럼 나이가 한창 어린 숫처녀가 자식까지 있는 홀아비를, 그것도 상처한 지 삼년이 지나도록 상사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자를 좋아하다니,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고!’

이쪽에서 중산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삼월이는 이슬에 젖은 비비추 같은 순박한 자태를 뽐내며 아침 반찬거리 장만에 여념이 없다.

서른이 넘은 홀아비 주제에다 자식까지 딸린 김 서방의 처지로 찬밥 더운밥을 가릴 계제도 아니지만, 그러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조강지처를 그토록 못 잊어 하고 있는데 그런 열부(烈夫)한테 무조건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지를 않은가?

 

정대재/소설가

.

 
 
 
내용
이름
   비밀번호
     
     
     
     

최근기사
밀양시시설관리공단 「맑은물이 유소년
밀양 초동 꽃새미마을 허브야생화 전시
두뇌의 힘을 키우는 볼텍스
환대(歡待) 산업에 올-인(all i
커피 한 잔, 그 향기는 좋았으나
삶의 물음표 앞에
초당적 정책연구 모임 ‘국회 ESG
밀양의 호국성지 표충사, 19일 춘계
금낭화
박해대 캘리그라피
감동뉴스
이웃과 나누는 행복한 일상
홀로사는 어르신 효도관광
수소원자에너지준위가 E1>E2>E3.
깜짝뉴스
누적 적자경영의 '밀양무역&#
세계최대규모 김치공장 밀양유치 확정
축협, 축산물품질경영대상 수상
 
전체 :
어제 :
오늘 :
(50423)경남 밀양시 북성로2길 15-19(내이동) 밀양신문 | Tel 055-351-2280 | Fax 055-354-0288
Copyright ⓒ 밀양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ly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