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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

[2019-05-14 오전 9:49:10]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이다. 화려한 꽃의 축제가 끝나고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는 모두 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그 행복이란 것은 화목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효도의 실천은 가정을 바르게 세우는 기본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이 형제간의 우애도 두텁고 자신의 가정도 반듯하게 꾸려 나간다. 그러나 효도는 의무가 아니며 그저 선택사항 일 뿐이라는 사고가 나날이 확산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기도 하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의 어머니가 한 달 전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풍문으로 들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SNS나 우편으로 부음이 전달되었는데 내가 확인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내게는 알리지 않았는지, 친구가 상을 당했다는 말이 거짓 소문이었는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한편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사실 확인을 위해 직접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양병원에 딸린 조그만 장례식장에서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어머니를 떠나 보내셨다고 했다. 그 친구의 가족은 평소 교분의 폭이 넓어 부고(訃告)를 했더라면 제법 많은 사람이 빈소를 다녀갔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한편 서운하기도 했지만 평소 그 친구의 성품으로 보아 충분히 선택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장례식은 지나 간지가 한 달이 넘었고 따로 위로를 해 줄 기회가 없어 혹시 49일 재를 지내는지 물어보았다. 마침 돌아오는 일요일에 가까운 절에서 마지막 재를 지낸다는 대답을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나는 49일 재를 문상했다. 그 날은 산 벚꽃이 함박눈처럼 흩날리는 봄날이었다. 벚꽃 그늘아래 앉아서 한참동안 친구 어머니의 마지막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올해로 아흔 셋. 2남 3녀를 두셨다. 위로 누님 셋을 내리 출산하시고 첫 아들인 친구를 낳았으며 이어서 막내아들을 두셨다. 한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기 시작했고 2년 전부터는 증세가 심해서 누군가가 곁에 꼭 있어야만 했다.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자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여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육십 중반의 나이에 거의 매일 어머니 병간호에 매달렸다. 목욕이며 머리를 감겨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이불을 빨고 청소를 했다. 익숙하지 않고 힘든 일을 하면서 간혹 울기도 하고 자주 찾아오지 않는 누님들과 동생을 원망도 많이 했단다. 힘들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 때마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아 기르시던 길고긴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어려움과 순간순간의 고통들을 생각하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수없이 다잡았다고 한다. 누님들과 동생이 어머니를 시설이 좋은 요양병원에 모시고 다 같이 경비를 나누어 부담하자는 제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딸 셋 후에 얻은 귀한 첫아들이라고 온갖 사랑을 베풀어 주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 없어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 힘이 들어도 참고 집에서 모셨다고 한다.
 

친구는 아들만 둘을 두었고 큰 아들은 공기업의 중견 간부인데 영국에 파견 나가 일하고 있으며 지금은 아들 가족 모두가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있다. 둘째는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간혹 정신이 돌아오는 짧은 순간이면 언제나 영국에 있는 큰 손자를 찾으시면서 그 놈을 보아야 내가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하셨단다.  

어머니는 멀리 가 있는 큰 손자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올 때까지 숨을 멈추지 않았다. 큰 손자가 집에 도착하는 그 날 기적처럼 다시 정신을 차리시고 큰아들과 맏손자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장롱 맨 아래 칸 바닥에 보면 너를 낳아서 처음 입혔던 배냇저고리와 네가 자랄 때 신었던 고무신이 있고, 너를 업어서 키웠던 이불(포대기)과 띠가 들어있다. 그 이불과 띠로 나를 업고 우리 집을 한 바퀴만 돌아다오. 그리고 네가 신던 고무신을 내 발에 한 번 신겨 주고 배냇저고리도 좀 보여다오”라고 힘겹게 말씀 하셨단다. 그날 친구는 어머니의 작은 발에 검은 고무신을 신기고 그 이불(포대기)과 띠로 마른 짚단처럼 가벼운 어머니를 업고 집을 한 바퀴 돌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노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나도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었다. 육십 중반의 나이에 친구 간에 이야기 하며 울 수 있는 일이 이런 일 말고 또 있을까? 그날은 이 나이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자식의 도리를 다했던 친구가 참으로 부러웠었다.
 

이미 40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제대로 한 번 돌봐 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린 불효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천지가 초록으로 물들고 어머니날이 있는 5월의 중순이었다. 오월은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소쩍새 울음소리 들으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달이기도 하다. 저 넓은 보리밭의 초록 물결이 고향의 봄을 다시 나의 마음에 실어다 주기를 바란다.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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