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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할 수 있는 작은 한가지

[2019-11-20 오후 5:18:10]
 
 
 

때때로 작은 행동의 위력에 놀라곤 한다. 작은 것은 무엇이고, 큰 것은 무엇이며 작은 것이 과연 작은 것에 그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 가운데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질 때도 있지만, 태산도 옮겨놓을 만한 의지에 놀랄 때도 있다.

요즘 학숙에서 새로 개설한 한시·한문 강좌덕분에, 삐치고 꺾으며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한자의 매력에 푹 빠져 서당 학동들 마냥 매주 금요일을 기다리는 날들이다. 잊고 있었던 한자들을 다시 연습해보기도 하면서 선비의 기개를 품은 듯이 스스로가 장한 시간들이 가을에 만난 소소한 기쁨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學而時習之不亦說乎 ! 이러라.

중국 후한시대 중국과 그 주변민족의 역사를 포괄하는 방대한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인내하면서까지 선친의 유업을 이어 완성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하고 물었을 때, 답을 대신해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人固有一死이니 惑重于泰山이요, 惑輕于鴻毛用之所趨異也니라 사람은 반드시 한 번의 죽음을 맞는데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깃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나는 이 말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비근한 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난주에 블라디보스톡에 다녀온 이야기를 잠시 해보면, 블라디보스톡 공항을 떠나 호텔로 가는 길가에 사열해 있던 자작나무들이 이국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다. 러시아의 으뜸 자랑거리로 꼽히는 백색의 미녀 러시아 아가씨들을 상징한다는 자작나무는 늘씬하면서도 매끈한 백색 피부를 자랑하는 독특한 나무였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수종이기도 했지만 그 고고한 자태와 기품이 자못 우아했다. 친근하면서도 낯설었고 동양적이기보다는 서양의 이미지가 더 강한 느낌의 도시 블라디보스톡 아라사라 불리던 독립군들의 비밀스런 대화에서 듣던 이름이라서 그런지 블라디보스톡은 우리에게 어쩐지 친근한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방. ‘블라디보스톡동방을 정복하라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도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루스키 섬 안에 있는 극동연방대학 캠퍼스 안을 산책하면서 마치 유학생이라도 된 듯이 구내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단기 어학연수라도 다녀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릴없이 허송한 시간들이 아쉬워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배움과 견문의 욕망은 오히려 커진다. 겨울이 오면 영하 40도 추위는 추위도 아니라는 곳인데, 이곳까지 옮겨와야 했던 우리 민족의 발자취들과 투쟁의 역사를 훑고만 지나가기에는 아쉬운 감이 많았다.

그렇게 한 며칠 집을 비우는 사이 나의 열혈 독자에게서 등기 우편물이 왔었고, 집이 비어 우체국에서 보관하고 있지만 7일까지 보관 예정이어서 이후 반송한다는 메모가 현관에 붙어 있었다. 등기로 급히 전하고 싶었던 소식을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서둘러 우체국으로 전화를 걸어 그 우편물을 꼭 받고 싶다. 그런데 사정상 7일도 8일도 밤늦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다음 주 월요일에 우체국으로 찾으러 가면 안되겠냐고 담당직원에게 통사정을 했다. 규정상 등기 우편물을 그렇게까지 오래 보관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재차 묘안을 물었더니 그러면 담당 집배원에게 부탁을 한번 해보라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래 전화를 해서 이만저만 하니 오시는 길에 좀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나는 정히 고집을 부릴 수도 없고 바쁜 분의 시간을 뺏어서도 안 되겠기에 그럼 알겠노라고 하고 아쉽지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 집배원에게서 다시 전화가 와서는, 담당직원으로부터 부탁 전화를 받았다며, 내일 그쪽으로 배달 나갈 때 갖다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우체국 직원의 배려에 크게 감동받았다. 규정만 따지고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었고, 집배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중요한 우편물인 것 같으니 좀 갖다 주면 좋겠다는 부탁까지 할 필요는 굳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집배원에게도 이런 아량을 본보이게 되었고, 본인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어 인정이 남아있음을 증거 해 보일 수 있었으며, 우편물을 전해 받은 나는 물론이거니와 반송될 뻔했던 우편물 되받지 않은 보낸 분까지 포함해 결과적으로 모두 네 사람을 기쁘게 하는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나는 이 훈훈한 이야기를 이사장님께 말씀 드렸더니, 그 이야기를 신문 칼럼으로 써보면 좋겠다고 하셔서 이 글의 소재꺼리로까지 확장 되었다.

우리 학숙에서는 자기 직무 이외의 일도 마다하지 않고 주변을 돕는 사람들을 미국의 유명 우체부의 이름을 따서 ‘Fred(프레드)’ 라고 부르고 있으며, 특별상을 제정해 올해로 3년째 수상자를 찾아 시상을 하고 있다. 학숙에는 이런 Fred들이 많이 있다. 우선 원조 Fred이신 우리 이사장님, 그리고 나도 Fred이고 싶어 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이는 우리 학숙의 이상이기도 하다. ‘작지만 가치 있는 것을 찾아서 배우고 봉사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자22년 째 그런 운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안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한 가지라도 찾아보자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나의 업무 이외에도 남을 기쁘게 하거나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작지만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 일. 그 출발은 눈여겨 보는 일’, ‘예사로이 보지 않는 눈길속에 있을 것임을 믿는다.

 

정희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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