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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꿀 권리

[2020-04-29 오후 3:18:13]
 
 
 

꽃의 향연을 노래하던 봄날은 이제 곧 먼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아마도 다시는 예전의 그 싱그럽던 봄날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온몸을 지긋이 누르듯 음습한다. 참으로 값비싼 통증이다. 꽃들이 남기고 간 연둣빛 아름다운 날개 짓마저도 감흥이 없고, 오직 슬픔에 겨운 봄을 아프게 견뎌내고 있는 요즘. 모두들 각각의 무게만큼 지쳐가고 있는 느낌이다. 제 각각의 자가 격리 수용소에서 유폐(幽閉)된 채.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이라 했지만, 인간에게 있어 절망하는 마음만큼 실존적 고민도 없을 것이기에, 나는 늘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을 증거하고 싶었다.

그런 내 희망의 기저에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언제나 늙지 않는 상상력의 발전소와도 같은 동심의 세계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의 두둑한 배짱 또한 바로 동심의 세계에서 빛나는 보석상자들 덕분이었다고 믿고 있다. 사상 초유의 팬데믹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인간 세상은 이제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놀라운 변화 속에 던져질 각오를 해야 할 시점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장들이 날마다 날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꿈꾸는 소녀 도로시(?)여사에게도 새로운 변화와 도전의 시간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비로소 소녀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성숙한 여인으로서의 길로 들어서야 하리라는 예감. 그래서 어제는 아끼던 동화책들을 마저 챙겨 지인의 딸에게 택배로 보냈다.

지난 41일 후보군에 6년이나 머물러 있었던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알마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기사는 필자에겐 특히 고무적이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도 1979, 1982KBS에서 방영되었다. 이 시리즈는 나를 비롯한 당시 청소년들의 말랑말랑 하던 감수성에 다양한 색들로 채색해준 놀라운 발상들로 끝없는 호기심의 세계를 자극해 주었다. 이 상은 아동문학사에 길이 남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사후에 스웨덴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며 제정한 상인데, 아동·청소년 문학에 대한 흥미를 고취시키고 아동 인권을 높이는 작품과 작업에 수여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더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상의 거액의 상금은 어느 대기업이나 대부호의 스폰서가 아니라 스웨덴 국민의 세금으로 제정되었기 때문에 스웨덴 국민이 주는 상이라는 것이다.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국가가 아닐까.

이제 우리가 예측하고 있었던 ‘untact 비대면현실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암울하고 미래 또한 불확실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알버터 아저씨의 편지를 기다리는 少女로 남아 있고 싶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면 온갖 상상의 날개를 타고 날아다니지 않았던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캔디가 울면 함께 울었고 캔디가 웃으면 함께 웃었다. 철이와 메텔을 따라 은하철도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날아다녔으며, 양탄자를 타고 어디든 날아다니는 신밧드를 기다리며 두근두근 나의 가슴은 언제나 설레기만 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이런 아름다운 동화들을 보면서 사려 깊은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수혈 받을 수 있었다. 낙동강가의 조그만 시골 마을의 소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던 마을이 언제나 좁고 답답했다. 그 소녀에게 회오리바람을 타고 마법의 세계로 날아간 도로시는 일생을 두고 흠모할 만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마법의 세상을 마음껏 여행했던 도로시가 무사히 캔사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도로시여사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러닉하게도 우리는 꿈꿀 권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렇게 동심을 잃은 자리를 가득 채운 것은 물질에 대한 욕망들이었고, 꿈에 대한 가치가 사정없이 평가절하 되었다. 꿈꾸는 소년 소녀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할 것을 믿는다.

 

*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주인공 도로시

정희숙/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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