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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지평선 1권(4)
제1장 산사를 다녀오던 날
[2018-12-14 오전 10:02:37]
 
 
 

두 친구(4)

중산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아름드리 거목을 이룬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들의 신록 사이로 아슴푸레 뚫려 있는 먼 데 하늘을 아득히 바라다본다. 여말·선초의 대학자인 양촌(陽村) 권근(權近) 선생이 밀양 읍성의 동남쪽 성곽 안쪽에 위치한 이곳 무봉산 기슭의 영남루에 올랐다가 지었다는 칠언율시(七言律詩)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次密陽城嶺南樓韻[(차밀양성영남루운) 밀양성 영남루 시에 차운함〕
 高樓百尺控長天(고루백척공장천) 백척 높은 다락이 긴 하늘을 끌어 당기니
 風景森羅?案前(풍경삼라궤안전) 책상머리에 풍경이 삼라(森羅)하였네.
 川近水聲流檻外(천근수성류함외) 시내가 가까우니 물소리가 난간밖에 지나가고
 雲開山翠滴?邊(운개산취적첨변) 구름이 개니 산의 푸르름이 처마 끝에 듣네!
 
 千畦壟畝禾經雨(천휴농묘화경우) 천휴 밭이랑에 벼가 비를 겪었고,
 十里閭閻樹帶煙(십리여염수대연) 십릿길 마을 거리의 나무는 연기를 띠었구나!
 匹馬南遷過勝地(필마남천과승지) 필마로 남으로 와서 경치 좋은 곳을 지나니
 可堪登眺?賓筵(가감등조첨빈연) 올라와 바라보며 손님 자리에 낄만도 하네 그려.

옛 선비는 가셨어도 영남루에 올랐다가 남기신 그분의 고결한 시심(詩心)은 오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생생하게 남아 온 산자락에 그윽하게 어려 있는 듯도 하였다.
 중산은 옛 선현의 묵향 깊은 체취를 정결한 신록 속에서 느끼면서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하니 ‘성춘초목심 (城春草木深)’이라 더니, 나라는 망했건만 이날따라 청태 낀 성곽 안의 무봉산 신록은 더욱 푸르고, 쪽빛 하늘도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높고 청명하였다.
 옛날, 세종 임금 때 한글 창제에 참여하기도 했던 범옹(泛翁) 신숙주(申淑舟) 같은 이도 이곳 영남루에 올라, “신라 고을 60여 관청에 누 (樓), 사(寺), 대(臺), 관(館)이 없는 곳이 없으나 홀로 이 다락만이 영남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그 경치의 아름다움이 영남에서 으뜸이기 때문임을 이제야 알겠노라.”고 하였다던가?
 그러나, 그 영남루를 에워싼 사방 천지에 이렇듯이 신록이 눈부시게 우거지고, 멀리 응천강 건너편의 백사장 쪽에서 단오절 풍악 소리가 낭자하게 들려오건만, 분명히 상하 관민이 하나 되어 두루 흥겨웁던 지난날의 그 대단한 조선 단오 명절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도자 없는 오합지졸들끼리 무얼 한단 말인가. 이건 아니야. 모두가 다아 허깨비 놀음일 뿐이야!’
 하루가 다르게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고, 극단적으로 보수적이던 양반 사대부 집안에서도 친일 개화파 인사가 속출하는 판이었다. 혹자는 이 시대를 일컬어 말세라고도 했고, 혹자는 싫건 좋건 간에 신·구의 양대 조류가 혼재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이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개화 격변기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중산은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식민지 시대를 결코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쉽사리 적응할 수도 없었다.
 망국의 한을 품고 비명에 가신 승당(承堂) 할아버지와, 벼락 맞은 고목처럼 파란만장한 세월 속에 홀로 남아서 외로이 가문을 지키고 계시는 후원의 용화당(龍華堂) 할머니….
 요즘, 조석으로 용화 할머니께 혼정신성(昏定晨省)으로 문안인사를 여쭐 때마다 중산은 자기가 열네 살 되던 해인 지난 을사년 늦가을 어느 날 저녁, 벼슬도 버린 채 홀연히 서울살이를 중단하고 황황히 낙향하셨던 승당 할아버지의 그 벼락 맞은 고목 같은 모습을 떠올리곤 하였다.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던 시절, 착검을 한 일본군의 협박과 그들의 조종을 받은 을사오적들의 매국적 흉계로 인하여 합방의 전 단계인 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궁내부(宮內府) 칙임관(勅任官)으로 나라님을 가까이서 모시던 노신하로서, 그리고 황후의 총애를 받았던 황실의 한 외척으로서 느꼈던 그분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셨을까.
 비분강개로 망국의 한을 견디다 못해 낙향하시던 그 길로 가족들의 만류도 한사코 뿌리친 채 재악산(載岳山) 표충사(表忠寺)의 골이 깊은 금강동(金剛洞)의 골짜기로 잠적하셨던 승당 할아버지―.
 중산은 첩첩 산중 토굴 움막 속에서 경술국치의 비보를 접하자마자 마침내 할복 순절로써 파란만장한 생을 접으셨던 승당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남다른 비애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망국의 한을 품고 그렇게 분연히 세상을 등지셨던 할아버지의 용력(勇力) 못지않게 위풍당당하신 모습으로 비어 있는 엄부(嚴父)의 자리를 담대한 여장부의 기개로 채워가며 수많은 가솔들과 가문을 의연하게 이끌어 오시던 여황 같던 할머니의 기상마저도 이제는 예전 같지가 않으신 것이다.
 고집스럽도록 엄연한 오랜 가풍에 따라 아직도 옛날 선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외양처럼, 중산은 그 사고방식이나 생활 태도에 있어서도 여전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그늘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려고 해도 지난 시절의 철옹성 같은 위정척사적(爲政斥邪的) 가풍 때문에 사고의 진전에는 한계가 있었고, 운신의 폭은 언제나 옛날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왜색풍의 외양을 하고 다니거나, 일본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모두가 다 친일 인사가 되는 것이 아닌 줄을 뻔히 알면서도 중산은 왠지 그런 사람만 보게 되면 이방인을 대하는 것처럼 서먹서먹해지고, 어떤 거리감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었다. 방금 일본 유학을 하고 돌아온 운사에게 부럽다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결코 좋은 뜻으로 뱉어낸 말만은 아닌 것이다.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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