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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지평선 1권(13)
제1장 산사를 다녀오던 날
[2019-04-12 오전 9:48:40]
 
 
 

천추에 새긴 文樣(4)

위로하는 운사의 말에 중산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다그치듯 항변을 한다.
“그러니 어디 목숨인들 부지하시겠나? 게다가, 그것만도 아닐세! 농토를 강탈당하고 왜놈들한테 대들었다가 붙잡혀 간 우리 민초들은 또 어떻다고! 왜놈들이 무등록 토지들을 국유지로 환수하는 바람에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 오던 무연고 전답과 역둔토를 몰수당하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우리 상남면의 금동역, 백족역의 역마을 사람들 말이네! 그리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억울하게 땅을 빼앗긴 무지한 백성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왜놈들한테 뒤늦게 대들었다가 모조리 잡혀 가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아직도 저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잖는가, 이 사람아! 그런데, 내가 어찌 피가 끓어오르지 않겠는가?”
“놈들의 마각이 날로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건 알았네만, 듣고 보니 정말 기가 차구만…. 하지만, 젊은 혈기만 가지고 적수공권으로 당장 무얼 어찌 하겠는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
“계란으로 안 되면 돌멩이라도 던져 봐야지!”
그들은 착검을 한 왜놈 헌병이 보초를 서고 있는 헌병대 정문이 저만큼 바라보이자 잠시 대화를 중단한 채 밀양 관아의 객사 쪽으로 난 언덕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길은 새로 들어선 일본인 주거 지역을 지나서 객사가 있는 송림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인 주거지역을 벗어나자 저만큼 언덕 아래쪽에 기역자 모양으로 처마를 맞대고 서 있는 객사 건물이 내려다 보였다. 지금은 그 일부를 개조하여 일본인 관리들의 관사로 쓰고 있는 모양이지만, 예전에는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밀양부(密陽府) 관아의 부속 건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행정상 중요한 지역에는 읍성을 두고, 국방상 중요한 그 읍성의 요충지마다 산성을 설치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각 도의 중요한 읍성에는 왕의 위패를 모시거나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들이 묵어갈 수 있도록 반드시 객사를 설치했던 것이다. 왕권을 상징하는 객사 건물은 읍성의 가장 중심부에 배치하는 게 관례였으며, 객사의 정면에 넓은 광장을 만들고 서쪽에는 문관이 사용하는 본부 향청을 배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동쪽에는 중영, 훈련원, 군기고 등을 배치했는데, 일종의 교육기관인 향교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는 약간 떨어진 한적한 곳에 두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영남루와 같은 거창한 건물이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들이 묵어가던 관아 객사의 부속 건물이었다고 하니, 당시 조정 사신들의 위세가 어떠했는지는 과히 짐작을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옛날, 한양으로 가던 나그네들은 밀양 읍성의 남문과 서문으로 들어오고 동문과 북문을 통해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嶺南大路)를 이어 갔다는데, 응천강에 떠 있는 배다리 부교(浮橋)를 건너온 길손들 치고 강가 벼랑 위에 우뚝 서 있는 저 영남루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웅장한 누각이 관아 객사의 부속 건물이었으니 힘없는 일반 백성들이 영남루에 오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층계로 연결한 서쪽의 침류당(枕流堂)과 동쪽의 능파당(凌波堂)을 부속 건물로 거느린 독특한 양식의,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현판을 단 영남루―. 그 이름만큼이나 높고 아름다운 옛 누각은 민족의 쓰라린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옛날과 변함없이 밀양 부중을 내려다보며 거기 그렇게 두 활개를 활짝 펼치고서 우람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조선 선비들의 그 위세와 풍류가 넘치던 영남루도, 동헌을 비롯한 부중의 유서 깊은 크고 작은 여러 기관의 건물들은 대부분 헐려서 왜놈들의 관사 건립 목재로 쓰이거나 원형 유지하고 있는 것도 지금은 모두 왜놈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으니 힘없는 조선 백성들에겐 멀리서 바라보며 구경이나 해야 하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저것 좀 보게. 뜻 깊고 유서 깊은 옛 건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내 중심부의 요충지란 요충지는 모두 다 왜놈들의 차지가 되지 않았는가? …망할 놈들 같으니라구!”
눈 아래로 펼쳐진 성내 일대를 내려다보면서 중산이 새삼스럽게 불같은 목소리로 비분강개를 한다.
“글쎄 말이네! 이번에 귀국하고 보니 우리 밀양성 안의 모습도 그새 천지개벽을 해 버린 것 같으이. 이렇게 되어 가다가는 왜놈들의 등쌀에 이 아름다운 우리 삼천리강토에 무엇 하나 제대로 남아나는 것이 없겠네 그려!”
“그래서 국내에서 매일 이런 꼴만 보고 살자니 피통이 터져 못 견디겠다는 말이 아닌가, 이 사람아!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약과일세! 그놈들이 펼치고 있는 소위 <토지조사사업>이라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더니, 이건 순전히 날강도 같은 짓거리더란 말일세!”
중산은 지난날 겪었던 지긋지긋한 <토지조사사업>에 관한 일들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친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는 농업이 주산업인 조선의 식민지 정책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토지 제도를 식민지 경영에 알맞은 형태로 개편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찌감치 <토지조사사업령>을 공포해 놓고서 벌써 근 십 년 가까이 그 사업에 박차를 가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일본자본의 조선 토지 점유를 위한 장애를 제거해 줌으로써 일본인들의 자유로운 토지 매매를 보장함과 동시에, 식민지 통치를 위한 조세수입을 늘리려는 검은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미 과잉 상태에 놓여 있는 자국 농민들의 생계보전 수단인 한반도 이주정책을 조속히 실현시키기 위하여 정책적인 뒷받침을 해 주려는 속셈도 함께 깔려 있었다.
이에 따라,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맹주(盟主)를 꿈꾸는 일제는 광무 9년이던 지난 1905년에 자기들의 뜻대로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1906년 2월에 조선 통감부를 설치하면서부터 일찌감치 <토지조사 사업>을 계획하여 합방이 되던 경술년(1910년) 3월에 조선 토지 조사국을 설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동년 8월 29일에는 국권 침탈과 동시에 그 업무를 통감부를 확대·개편하여 새로 만든 조선 총독부 안의 임시 토지조사국에서 전담케 하였던 것이다.

 

岳山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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