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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온 손님(2)

[2020-10-29 오전 11:21:13]
 
 
 

3장 우국(憂國)의 밤

북쪽에서 온 손님(2)

 

우선 저의 소개 말씀부터 올리겠습니다. 저는 신의주에서 온 최응삼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방금 윤세주 군이 저를 두고 미곡 무역상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은 <반도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미곡상 행세를 하면서 대종교 신의주 지사(支司)의 사교 노릇과 함께 우리 대종교 산하의 독립운동 단체인 <중광단(重光團)>의 국내 통신 연락책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그는 지난 을묘년(1915)에 일제가 소위 총독부령 제83호로 <종교 통제안>이라는 것을 만들어 민족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대종교를 종교로 가장한 항일 독립운동 단체라고 불법화 시키자 그 충격으로 나철(羅喆) 대종사가 황해도 구월산에서 순교조천(殉敎朝天)한 이후, 그 뒤를 이은 제2대 김교헌(金敎獻) 총전교가 지난해에 왜놈들의 박해를 피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북만주 화룡현으로 총본사를 옮긴 뒤로 공무수행 차 그곳을 드나들다가 고향이 이곳인 윤세복 총전강을 만나 뵙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이번에 지난날 <광복단>에서 활동하다가 경상북도 관찰사를 지낸 경북 칠곡의 악덕 지주 장승원(張承遠)과 충남 아산의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 등의 친일파들을 처단하는 일에 가담한 뒤, 그 사실을 공포하면서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는 바람에 왜놈들의 검거 선풍을 피해 만주 길림으로 망명하셨다는 이곳 출신의 황상규 선생을 만나게 되었지 뭡니까!”

호오, 일이 그렇게 된 것이구료? 그런데 황상규 선생은 요새 어떻게 지내고 계시던가요?”

지금 길림성 왕청현에 본영을 두고 있는 <중광단(重光團)>에서 재무담당으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중광단>이라고요?”

. 나철 교주가 순교 조천했을 때, 항일 무장투쟁을 위해서 교통 계승마저 사양했던 백포(白圃) 서일(徐一) 선생이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국내에서 의병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해 간 계화(桂和채오(蔡五양현(梁玄) 등의 대종교 교도들을 중심으로 하여 1911년에 조직한 무력 항일 단체인 <중광단> 말입니다!”

, 그렇습니까? 시생은 백포 선생의 명성과 그분이 창설한 <중광단>에 관한 얘기를 들은 바가 있지만, 백민 선생이 <중관단>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밀양의 백민 선생도 서일 선생과 함께 중광단에서 활동 중이라니 참으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구료!”

이곳 밀양이 예로부터 의열 애국지사가 많이 난 충절의 고장이니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최응삼은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백포 서일 선생에 대하여 다시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백포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 출신으로 18세까지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신학문에 뜻을 두고 경성에 있던 성일사범학교를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에 을사조약의 체결을 겪었고, 서른 살에는 망국의 경술국치를 겪으셨는데, 서른한 살 때인 그 이듬해에 국내에서의 항일투쟁의 어려움과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통분해 하시면서 당시 우국지사들이 많이 망명해 있던 동만주 왕청현으로 떠나셨던가 봅니다!”

백포 서일은 그곳에서 한승점(韓承点)이 설립한 대종교 계통의 명동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국경을 넘어 물밀듯이 이주해 오는 고국의 한인 자녀들을 가르치며 단군사상과 함께 조국독립의 강한 의지를 불붙였으며, 이듬해 10월에는 선생 자신도 마침내 대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추구, 실행하는 대종교의 정신은 망망한 만주 벌판을 누비던 우리 독립군들에게 막강한 정신력을 심어 주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편이었고, 그는 그 사업에 신명을 다 바쳤다고 한다. 두만강을 넘어 망명해 오는 열혈 청년들이 줄을 이을 때, 서일 선생은 북간도 일대에서 대일항전을 노리는 의병들을 규합하여 <중광단>을 조직하였으며, 단장에 취임한 그는 무력항쟁의 기틀을 잡기 위한 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대종교의 이념 계승과 전파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대종교 입교 후 3년 동안에 동만주, 북만주, 연해주, 함경도 일대에서 무려 10여만 명에 이르는 교우를 확보하는 눈부신 포교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이들 교우들 중에서 젊은 청년들을 선별하여 독립군으로 편입시키고, 일반 교우들에게는 군량 조달 등 다른 직무를 적절하게 부여하는 등, 인적자산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는 얘기였다.

서일 선생과 <중광단>을 비롯하여 우리 밀양의 단애 선생과 백민 선생에 관한 얘기를 이렇게 소상하게 듣게 되었으니, 오늘 여기에 모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독립운동의 값진 귀감이 되고 확고한 활동지표가 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서일 선생과 중광단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듣고 난 을강 선생은 사뭇 감동한 얼굴로 거기에 대한 답례 삼아 자신이 걸어 온 발자취에 대해 소개를 한다.

시생도 이곳 밀양에서 백포 선생처럼 인재 양성을 위한 애국교육사업에 종사하다가 뒤늦게 대종교에 입문하게 된 사람이외다! 그 후, 대종교 밀양 지사의 사교 일을 맡아보면서 사설 동화학교를 세워 교편을 잡고 있다가 왜놈들이 학교를 강제로 폐교시키고 우리 대종교마저 불법화 시키는 바람에 지금은 이 밀양읍교회와 간판을 내린 예전의 우리 대종교 밀양지사의 시교당을 비밀리에 드나들며 지난날 가르쳤던 옛 제자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소일하고 있지요.”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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