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행복
 
 [2018-12-17 오전 10:19:30]

황홀한 저녁노을은 김인배님의 매혹적인 트럼펫 연주 ‘석양’을 미처 다 듣기도 전에 어둠으로 변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도닥여 주던 개울물 소리도 자리에서 일어서면 몇 발자국 내 딛지 않아 사라진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닫는 12월이다.
 

살면서 오래 못갈 것을 영원할 줄 알았고 지금 좋으니 언제까지나 좋을 줄 알았다. 그래, 죽고 못 살 것처럼 집착했던 일들도 미워하고 증오했던 순간들도 지나고 보면 허망하다. 많은 사람들과의 얽힘 속에서 바쁜 생활에 허덕여 왔지만 문득 돌아보면 덧없다.
 

복잡한 세상사를 향한 관심을 조금씩 거두어 가면서 주변의 소소하고 작은 것들에 자주 눈길이 가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습관이 몸에 배어간다. 오늘 아침 한 평짜리 내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상추를 보고 나는 너무 행복했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항상 평온을 꿈꾸며 단출하고 작은 행복을 끝없이 그리워한다. 인터넷과 통신 그리고 배달 문화가 발달하면서 굳이 이 곳 저 곳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많은 일들을 집안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이 제일 편하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 동네 새로 생긴 콩나물 해장국 집에도 창밖을 보고 혼자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두었다. 이러한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해  몇 년 전부터 지속적인 다양한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혼 밥, 혼 술, 케렌시아 등의 유행어가 현실이 되어 실제로 집에 머무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집에 머물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또는 게으르거나 비활동적인 사람 등 좋지 않은 쪽으로 많이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최근 집에 머무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홈족(Home 族)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 홈족은 단순히 집에 머물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 다양하게 여가 활동을 즐기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로 정확히는 ‘홈루덴스’라고 부른다. ‘홈루덴스’는 가정(Home)과, 유희·놀이를 뜻하는(Ludens)를 합친 합성어 이다. 20세 이상 59세 이하 성인을 상대로 한 최근의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무려 67% 이상이 여가 시간을 주로 집에서 보낸다는 응답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집에 있는 것이 가장 편하고, 집에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집에서 자주 하는 활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TV로 영화보기, 유튜브 컨텐츠 시청, 홈인테리어, 독서, 운동(홈트), 미술, 악기연주, 음악감상, diy, 홈파티 등 수없이 많은 것들을 제시했다.
 

최근 들어 우리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취미활동을 그룹으로 모여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집에 활동 공간을 마련하여 언제라도 스스로 즐길 수 있고 가까운 사람을 초대하여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사람들도 많다. 집의 거실을 음악실로 꾸미기, diy 활동을 위한 작은 공간 마련,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은 화실 확보, 차를 마시거나 조촐한 파티를 할 수 있는 멋진 홈 인테리어, 영화 감상을 위한 스크린과 빔프로젝트가 설치된 미니 극장 꾸미기 등. 집에서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 홈인테리어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지난달에 초대를 받아 지인의 집을 방문 했다. 우리는 야외 탁자에 앉아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쬐이며 넓은 정원의 늦가을 풍경을 바라보았다. 잔디가 단풍이 들면 또 그 나름 아름답다는 것을 가까이서 느끼기도 하였다. 커피에 취하고 주인의 배려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에도 취했다. 어느 소문난 카페나 찻집을 능가하는 멋진 분위기였다. 실내에는 차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멋진 북유럽풍의 인테리어가 우리를 맞이했다. 북유럽은 추운 지역이라 일찍부터 실내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홈인테리어가 발달했다고 하는데 최근에 우리나라 에서도 가정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그러한 홈 인테리어가 늘어나고 있다. 그 날 우리는 잘 갖추어진 연주실에서 연주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홈파티를 즐겼다.
 

아마도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도 다양한 취미를 즐길 수 있고,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해서 작은 행복을 함께 나눌 수도 있는 여건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집에 머무른다고 해서 언제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취미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의 공간을 방문하여 함께 여유 시간을 즐기며 행복을 나눌 수도 있다.
 

연말이라 이런 저런 모임이 많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유흥을 즐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제 홈루덴스 쪽으로 살짝 방향을 바꾸어 보는 것도 필요할 듯. 가족끼리 아니면 가까운 지인 몇몇이 서로의 집을 방문하여 편안하고 멋진 여가 시간을 보내는 조용한 한 해의 마무리도 좋을 듯하다. 우리도 이제 회비를 모아 판을 벌이는 놀이문화를 지나서 수준 있고 조용한 홈파티의 시대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