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귀털
 
 [2020-06-29 오전 11:08:30]

코로나19로 소소한 일상이 무너진 후에야 우리는 그 가치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항상 곁에 있어서 편리함과 소중함을 몰랐던 것들에 대해 감사함도 느끼고... .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이다. 가족을 떠나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예방약도 치료제도 없는 무서운 바이러스로 모든 관계가 끊어지거나 멀어져도 가족의 끈만큼은 놓칠 수 없는 최후의 동아줄임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평범한 사람들의 가족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요즘은 친목 모임 자리에서 자식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고 그냥 서로가 피하는 것 같다. 내 자식 자랑하면 자식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마음 상하게 할까봐 신경 쓰이고, 자식 걱정 늘어놓자니 궁상 해 보일뿐 아무 도움도 안 될 것 같아서이다.

언젠가 지인들 모임 자리에서 한 분이 자식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 ○○공기업에 다니는데 이번에 공무원인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었단다. 공무원 며느리를 보게 되었으니 직장상사 눈치 볼 것 없이 육아휴직 낼 수 있으니 한 씨름 들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자랑이 되고 말았다. 술기운 탓이었을까. 잠시 후, 30중반이 되도록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을 둔 사람이 갑자기 자리를 떠났다. 부부 모임의 자리였는데 남편이 먼저 자리를 떠나자 아내는 무척 당황해 하다가 따라 나갔다. 각자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었겠지만 한참동안 아무도 말이 없다가 슬며시 그냥 일어나 헤어졌다. 그 분은 한동안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간의 기간이 지난 후 아들이 국가직 7급 공무원에 임용되고, 같은 직장에 다니는 아가씨와 결혼도 하게 되면서 다시 그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마음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 비슷한 듯하다. 그래서 요즘은 자식 자랑 그만두고 손주 자랑을 가끔씩 하는데 그것도 차 한 잔 미리 시켜놓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 경우도 늦도록 손주를 안아보지 못한 분이 함께한 자리에서는 피하는 게 좋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자식 이야기, 손주 이야기는 삶에 재미를 더해주는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대화임에는 틀림없다.

30대 젊은 시절의 이야기다. 여름방학 중에 출근해서 근무하는 날이었다. A선생님이 유치원생 딸의 손을 잡고 학교에 나왔다. 선생님은 딸바보라고 소문날 정도로 딸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그리고 늘 깔끔한 외모와 잘생긴 얼굴에 예의바르기까지 해서 영국신사로도 불리었다. 그런데 그날 선생님은 며칠간 면도도 하지 않은 듯 턱수염이 제법 까칠하게 길어있어 덥수룩한 얼굴 모습이었다. “요즘 무슨 걱정할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얼굴이 까칠해 보입니다.” 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우리 딸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사연인즉, 턱수염을 까칠하게 길러서 딸의 볼에 대고 살짝 문지르면 아이가 가려워하면서 까르르소리 내어 웃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행복감을 자주 얻기 위해 면도는 삼 일에 한 번만 하고 깔끔한 얼굴 모습은 포기하기로 했단다. 학교 일을 마치고 딸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길게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던 기억이 난다.

A선생님을 최근에 만났는데 요즘은 딸바보에서 손녀바보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칠순의 나이지만 잔주름이 좀 늘었을 뿐 아직도 젊었을 때처럼 깔끔한 모습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수염은 깨끗이 깎으셨고 옷차림도 나이에 맞게 잘 갖추어 입었다.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릴 때 선생님의 옆얼굴을 무심코 보았는데 귀에 제법 긴 까만 털이 여러 개 자라고 있었다. 뽑지 않고 그냥 두면 나이든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뽑아도 또 다시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그래서 보통의 나이 든 사람들은 귀털 제거에 제법 신경을 쓴다.

선생님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아서 실례인줄 알면서도 양해를 구하고 물어보았다. “선생님, 귀털은 왜 뽑거나 면도하지 않았습니까? 보이지 않아서,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나요?” 선생님은 한참을 빙그레 웃기만 하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아내가 자주 귀털을 뽑아주었어요. 아내가 보기에도 지저분해 보였던가 봐요. 그런데 어느 날 시집 간 딸이 왔어요. 아내가 아버지 귀에 난 털 좀 뽑아드리라고 했는가 봐요. 딸아이가 내 곁에 와서 귀털을 뽑아주는데 아내 보다 손길이 부드러워서인지 참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다 다음에 딸아이 식구가 모두 왔을 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에게 부탁 했지요. 가만히 눈을 감고 손녀에게 내 귀를 맡기고 있으니 마치 구름위에 누워있는 기분이랄까.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녀가 외갓집에 왔다 간지가 두 달이 돼 가는데 다음 주에 온답니다. 그래서 외손녀가 오면 뽑아주려니 하고 그냥 있어요. 당연히 전화로 예약도 해 두었답니다. 보기에 좀 흉하죠? 그렇지만 다음 주에 아이들이 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난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도 이런 행복은 찾을 수 있겠다 싶어 적잖이 가슴이 뛰었다. 난 아직 이 작은 행복을 곁에 두고 한 번도 맛보지 못했다. 나의 딸과 손주들이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이것은 자랑도 아니고 그냥 내가 찾아가는 확실한 작은 행복 일 뿐이다. 오늘 따라 손주는 전생의 연인이라는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