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 동무 삼아 사는 삶!
 
 [2020-06-29 오전 11:16:12]

자연의 소리 듣는 하루가 즐겁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남보다 잘 살기 위해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위해 제각기 열심히 일을 한다. 한시(漢詩)젊을 때는 열심히 일 하라, 황천 가는 길은 앞뒤가 없다는 구절을 늘 가까이하면서 모름지기 청춘 아끼지 않고 앞만 보고 뛰어 왔다.

열심히 살았으니 쉴 만도 하건만 취미생활로 여행으로 노후를 즐기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도심을 떠나 자연을 닮아 살고 싶어 한다.

애써 땀 흘리는 것을 낙으로 삼는 것은 소일거리가 없으면 적적하다는 이유에서다. 무위도식(無爲徒食)하거나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일수록 치매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신체가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해 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는 좋다고 한다.

도회지 사람들이 42농이라 하여 도시와 시골을 출퇴근하듯이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농사일을 평생 해 온 토착민보다 더 곰살맞게 농장을 가꾸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수고와 일로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어 하는 의욕의 차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뭐든지 하고 싶어 해야 성과도 내고 일이 즐겁다.

문전옥답이야 여건이 더 좋겠지만 손바닥 만 한 밭이라도 유산이니 묵힐 수 없기에 줄곧 밭에 가서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 가뭄에 단비 적신 싱그러운 햇살 따라 밭에 가서 도라지와 취나물 밭매기를 하고 선영 벌초와 묵은 전답에 무성한 풀을 예초기 작업으로 땀범벅이 되었어도 마냥 행복하다.

남들은 농사도 돈 만드는 소득 있는 일이 아니면 재취업해서 월급쟁이로 제2의 삶을 살던데 궁색한 가난뱅이 이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 유유자적(悠悠自適) 청빈의 삶을 고집하는 것을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로는 정상이 아닐 것이기에 손가락 질 받을까 두렵다.

어쩌랴 좋아서 하는 일인데... 산밭에 들면 이름 모를 산새 소리가 동무되어 잡념도 싹 가신다. 특히 노랑새라 불리는 꾀꼬리는 몸을 숨기고 잘 보여 주지 않는다. 딱따구리는 울음이 아니라 먹이 사냥을 위해 부리로 나무를 쫒는 소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무념으로 자연에 동화되어 있다 따다닥 따다닥 나무 쪼는 소리에 가슴 썰어 내리며 놀랄 때도 있다. 숲을 깨우는 소리 이뿐이랴. 꿩 치는 소리, 노루도 겁 없이 스쳐 지나간다.

이런 자연에서 돈 되는 일도 아닌 것을 부모 안택이 있어 발길 자주 머물고, 봄이면 귀한 나물 봄맛 다시게 하니 잡초 무성한 산이 되도록 둘 수야 없지 않은가. 일이라는 것이 끝이 없다. 돌아서면 고개를 내미는 잡초도 밉지가 않다. 그 또한 삶이니까.

허리 펴 뻐꾹새 물 찬 날개 짓 따라가니 봄에 싹둑 잘라먹었던 두릅나무에 칡넝쿨이 덮어 숨통을 조인다. 낫을 꺼내 둘둘 감아 오른 칡넝쿨을 정리하다가 산새 집을 발견했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가 불청객의 난폭한 행동에 얼마나 다급했을까. 긴급대피, 둥지에는 알만 5개 덩그래 나약하게 떨고 있다. 어미 새 부부는 둥지 위 나무 가지를 옮겨 퍼덕이며 시위를 하는 건지 겁을 주는 건지 어찌나 애절하게 울어 대는지 작은 미물도 저러한데 아동학대로 세간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몹쓸 인간은 금수(禽獸)보다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미쳐 돌아가는 세상 이대로는 아닌데 다 자연 닮아 살았으면 치유가 될런가. 잠시라도 자연의 질서를 혼란케 한 폭력에 얼마나 놀랐을꼬. 미안한 마음에 얼른 물러서 어미 새 돌아와 알을 품기를 살핀다. 온기가 식을까봐 새 생명이 태어나 산밭의 새 식구가 될 그날까지 작업을 중단하고 산을 내린다. 혼자가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소중한 공간, 생명이니까.

세상이 힘들다. 앞만 보고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세월열차 위험천만이다. 모두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자연 닮아 살았으면, 삭막한 어지러운 세상 치유 될런가.